친구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을 불렀다

이심전심 밥상

by 오진미

“점심때 일 있어요?”

“아니요. 별일 없어요.”

“그럼 11시 반 즈음에 우리 집에 와요.”

매일 공원 운동을 같이하는 친구의 초대다.


후텁지근한 아침, 반가운 소식이다. 그는 이웃이면서 큰애와 막내의 친구 엄마다. 그는 아이들을 정성으로 키우고 집안일에 항상 부지런한 엄마다. 처음에는 간단한 인사만 건네는 사이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천천히 알게 되었다.


그는 아줌마들이 동네 카페 여행을 갈 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제 할 일에 집중하는 듯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알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만나는 시간에 비례해서 정이 들었다. 알고 지낸 지는 7년을 훌쩍 넘겼지만,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으며 공원을 돌며 천천히 스며들었고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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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차려준 점심 밥상


약속하지 않았지만 정해진 시간에 만난다. 그의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는 우리 집 아이와 단짝으로 매일 아침 집 앞에서 만나 등교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가고 나면 바로 공원으로 향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사계절을 서너 번 보내면서부터는 혼자 가는 길이 어색하다.


나는 수다쟁이고 그는 잘 들어준다. 한 시간 남짓을 같은 공간에 머물며 그에게 마음을 두게 되었다. 힘든 일상을 얘기하면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래요”라는 한마디를 던진다. 순간 찡해온다. 어느 날은 얘기하다 눈물이 나왔다. 그의 눈에도 송골송골 눈물이 맺혔다. 충분히 위로받고 힘들던 무엇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몇 주 전에 그를 집으로 불러 점심을 먹었다. 항상 야채와 열무김치며 소소한 것들을 살뜰히 챙겨주는 것이 고마웠다. 속이 복잡했던 날, 그가 시원한 음료수를 들고 차 한잔하러 온 발걸음에 깜짝 놀랐고 감격했다.


그동안 받은 것들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크림 스파게티와 샐러드, 라이스페이퍼에 야채를 감싼 월남쌈을 차려냈다. 밥을 먹으며 쉼 없이 떠들었다.

“다음에는 내가 맛있는 거 살게요.”

그가 집으로 가면서 한마디를 던졌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나 보다.


복숭아를 들고 그의 집으로 갔다. 식탁 위에 가득 차려졌다.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찬이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편육에 가지나물, 오이무침, 꽈리고추 멸치조림, 자박자박 국물 가득한 엄마표 열무김치에 김장김치, 단호박 찰밥까지 넘치는 한상이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직접 갈아 만든 감자옹심이 들깨탕.


지금까지 내가 대접받았던 밥 중에서 으뜸이었다.

“집에 있는 거로 만든 집밥이죠. 별로 차린 게 없죠.”

“아니요. 감동 주는 최고의 선물이에요. 나를 위해서 오롯이 이런 상을 차려준 게 엄마 말고 누가 있을까 싶네요.”


그에게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나 되뇌었다. 기억나는 건 없는데 잘도 알아내었다. 이 계절에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로 빼곡히 차려내었다.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난다. 무더위에 감자 껍질을 벗기고 강판에 갈아서 옹심이를 만드는 모습이 그려졌다. 날씨가 강적이다. 움직이는 일이 고역이다. 그는 땀으로 범벅된 몸으로 집에 오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였을 듯하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본의 아니게 그런 꼴이니 미안해졌다.

감자 옹심이 들깨탕

난 밥을 먹어야 정이 든다고 여긴다. 가끔 고마운 이들에게는 밥상을 차렸다. 잠깐의 수고로움으로 기분 좋은 한때를 선물할 수 있다는 게 기쁨이었다. 기꺼이 내주기에 채워지는 느낌이었고 설레었다.

친구의 진심을 마주했다.


“여기가 무릉도원이네요. 시원하고 이리도 맛난 음식이 있으니 말이에요.”

내 말에 친구가 살짝 수줍은 미소를 보낸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보며 손님에게는 최선을 다해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웠다. 엄마는 군대에서 휴가 나온 사촌 오빠들에게 시장에 가서 옥돔과 문어를 사 와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만든 밥 한 끼를 같이했다. 그때는 왜 저리도 번거로운 일을 하나 싶었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그와 난 어느새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 같다. 중년에 찾아온 우정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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