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무게를 가볍게 저녁 산책

by 오진미


저녁밥을 먹고 집을 나선다. 7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지만 밖은 겨울의 늦은 오후 분위기다. 빛은 남아 있고 어디를 가도 그리 위험하지 않다. 설거지를 끝내고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였다. 다녀오면 다시 씻어야 하는 일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습하고 더운 바깥공기에 몸을 내맡기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 층에 내리니 생각과 정반대다. 바깥공기가 시원하다. 살랑바람까지 불어주니 마음이 편안하다. 생각해둔 목적지로 향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서 있는 동네 산책길이다.

숲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도로는 꽤 북적인다. 먼발치서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아는 사람 같지만, 누군지 잘 모르겠다. 부지런히 걸어서 건널목 앞에서 마주쳤다. 그가 인사를 먼저 건넨다. 동네 슈퍼 사장님이다. 옆에 있는 딸아이와 알콩달콩 얘기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아침에 공원 걷기가 운동의 전부다. 집안일을 끝나고 저녁 늦은 시간에 아파트 주변을 도는 게 중요한 일과였지만 최근에는 쉬는 중이다. 일 년 전만 해도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도 거르는 일이 없었는데 한두 번 귀찮아서 건너뛰다 보니 일상이 되었다.

일요일을 아침 운동 없이 종일 집에서만 지냈다. 빨래와 설거지, 음식 만들기가 전부인 하루였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마음 놓고 먹었다. 동네 대형 마트가 새 단장 오픈 기념으로 폭탄 세일을 한 까닭에 9시도 채 안 된 시간에 장을 보고 왔다. 여러 가지 것들로 시장바구니는 꽉 찼고, 고기도 평소와 비슷한 가격이지만 양은 상당했다. 몸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고기와 거리를 두다 오랜만에 열심히 젓가락질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음날 깨었을 때 더부룩한 느낌도 싫었다. 해법으로 저녁 산책이 떠올랐다. 동네 주변 작은 숲을 걷기로 했다. 다른 가족들은 다 가기 싫은 눈치다. 누구에게도 강요하고 싶지 않아서 혼자 나섰다. 나 홀로 일 때 여러 가지를 만나고 더듬어 볼 수 있다. 그러니 따라나서지 않는 이들이 고맙다.


부부와 가족,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이들까지 각양각색이 사람들이 숲길에 끊임없이 이어졌다. 양쪽으로 동백나무와 은행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등 여러 가지가 서 있고, 중앙에 두 사람이 손잡고 걸을만한 좁은 길이 나 있다. 저 먼발치서 무더기 인파가 보이고 그들과 마주칠 때 즈음 어떻게 피해야 할지를 미리부터 염두에 둔다.

코로나의 심각성 때문인지 서로서로 조심한다. 모두가 마스크로 입 주변은 물론 어떤 이는 눈만 보일 정도로 가린 채 조금이라도 살이 닿을까 예민하다. 어떤 이는 푹푹 찌는 더위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했는지 아무도 없을 때를 틈타 마스크를 벗었다가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면 다시 낀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분 정도를 걸으니 몸이 가벼워진다.

“배불러서 못 살겠다고 말할 정도로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아. 한 숟가락 더 먹고 싶다 할 때 그만둬야 하는 데 그게 어려운 일이야.”

아버지는 종종 과식하는 나를 보며 이런 말을 잊지 않았다. 식욕이 왕성해질 즈음 과감히 멈춰야 현명하다는 것. 중년인 지금도 알지만 지키기 어렵다. 삼겹살이 지겨워질 때까지 먹은 오늘처럼 말이다.


밤에 걸으니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온다. 비를 구경한 지 일주일이 훌쩍 흘렀다. 흙바닥은 먼지가 폴폴 날려 빗물이 그립다. 나무는 작은 물방울 하나가 간절한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버틸만한지 향긋한 냄새를 풍긴다.


숲 옆으로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다. 운전대를 잡을 때는 몰랐다. 걸으면서 지나는 차들을 보면 무엇이 그리 바쁜지 모르겠다.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진다. 군부대에서 운영하는 절 입구에는 예쁜 등을 켜놓았다. 먼발치서 바라보면 마치 카페로 오르는 입구 같다.


생각이 많아지거나 불편할 때는 걷기가 최고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에 비례해서 마음은 가볍다. 눈에 들어오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가슴속은 홀가분하다.


몇 해 전만 해도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운동의 목적이었다. 최근에는 건강을 위해서 챙긴다. 관절이 약해서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늘면 몸이 반응한다. 무릎과 다리, 곳곳이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매번 겪고 나서야 조금만 먹을 걸 후회한다.


저녁 산책은 나를 위해 선택이었다. 주위가 컴컴해지기 시작한다. 어둠이 밀려오는 시간이 되었나 보다. 40여 분을 돌고 오니 땀으로 몸이 끈적하다. 씻고 나오는 순간 여기가 천국인가 싶다. 이 기분에 몸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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