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기가 이리도 힘들까?

by 오진미


비행기 타기까지 이틀 하고도 반나절이 남았다. 기다림은 해를 넘겼고 그 빛을 보려는 찰나다. 며칠 전부터 설레다 갑자기 감정의 반전이 찾아온다. “가도 될까? 혹시?” 여러 가지 물음들이 줄줄이 사탕 매달리듯 이어진다. 몇 분 동안 떠오르는 생각들에 멈춰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쉬었다.


“엄마 정말 우리 할머니 집에 가도 괜찮을까? 요즘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친구들도 휴가 계획을 잡았다가 취소했다고 하더라고.”

먼저 방학에 들어간 큰아이가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데 불쑥 꺼냈다. 얘기한 적이 없는데 아이도 나와 고민하는 지점이 맞닿아 있었다.


“그러게. 엄마도 가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저녁에 아빠 오면 한 번 더 얘기해 봐야 할 것 같아.”

저녁이 깊어질수록 빨리 결론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의견을 묻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가고 싶기는 한데, 뉴스나 이런 걸 보면 가는 게 망설여지고 여러 가지가 걸리네.”

“언니, 코로나가 절정을 계속 달리고 있어서 이럴 땐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결국은 언니가 선택해. 내가 결정해주기 어려운 문제야.”

예상했던 대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대화가 오가다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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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게서야 퇴근한 남편에게 다시 물음표를 던졌다.

“여보 어떡할까? 우리 가도 되는 걸까? 뭔가 불안하고 걱정되는 상황이라 빨리 결정하고 비행기 표를 취소해야 할 것 같아서.”

“나도 복잡해지더라고. 코로나 상황이 그렇고….”

“아니 그럼 먼저 얘기하지. 난 당신이 아무 말이 없으니 당연히 간다고 마음먹은 줄 알았지.”

그는 일 년 넘게 친정에 다녀오지 못한 나를 위해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예상외 답에 살짝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매일 눈떠서 잠들 때까지 코로나 확진자수와 위험 정도에 대해 딱지 앉을 정도로 듣는 까닭에 외면하기 힘든 것은 분명하다.


남편과 몇 분 동안 얘기를 나눴지만, 결론은 내지 못했다.

“당신 혹시 밤사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잖아. 낼 오전까지 생각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때?”

결국, 모든 공은 내게로 던져졌다. 큰 숙제를 남겨둔 까닭인지 선선한 바람이 들어와도 자주 뒤척이다 새벽에 깼다.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여보 어떡하지?”

“당신 편한 대로 해. 내게 알려주고.”

그의 반응은 몇 시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운동을 다녀오니 9시 40분 한두 시간 내로 결판을 내기로 했다. 그즈음 이미 다음을 기약해야겠다고 천천히 마음먹고 있었다.

그동안 간절히 기다렸던 그리움의 시간이 막을 내리는 줄 알았다. 영상통화나 사진을 통해서 얼굴을 보거나 풍경을 마주했지만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고 싶었다. 노트북을 켜고 항공권 구매 사이트에 로그인까지는 했는데 취소 클릭을 할까 말까 머뭇거리다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언제나 깊은 헤아림으로 도움을 주는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선택을 보다 선명하게 하면서 공감을 얻고 싶은 속내였다.

“짐 싸고 있어요? 바쁘겠네요.”

“아니요. 저 안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코로나 3단계로 확진자 수가 계속 증가 추세라 별일 없겠지만 여러 가지가 신경 쓰이네요.”

“마음먹을 때 가야 해요. 지금 확연히 좋아질 기미는 아직은 그러잖아요. 그런데 망설여질 때는 힘들죠. 그럼 마음 갈 때 가요”

잠깐의 전화 통화를 끝내고 산란했던 마음을 정리했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타닥하고 취소 클릭을 했다. 얼마 동안 멍해지다가 허탈하면서 여전히 아쉽다.


“엄마 비행기 표 어떻게 됐어?”

“집에 와서 얘기하자 더우니까 얼른 집으로 와 알았지.”

방학식 하는 막내가 학교 콜렉트콜로 전화를 했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만큼 마음이 쓰였나 보다. 2~3분 내로 아이가 달려왔다. 오자마자 책가방을 던져놓고는 재촉한다.

“응 우리 연기하기로 했어. 내일 가지 않고 좀 있다가 가는 거로.”

실망의 눈빛을 살짝 보이다 다시 명쾌하다.

“알았어. 뭐 방학이니까. 좀 있다 가면 되지 뭐.”


가까운 이들에게 전화를 부지런히 돌렸다. 돌고 돌아서 오는 건 결국 내 몫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멋쩍어진다. 나잇값을 해야 하는데 부모의 허락이 떨어져야 마음 놓고 무엇을 하려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한편으론 억지를 써서라도 내 희망 사항을 뒷받침하는 대답이 있다면 과감히 밀고 나가 비행기를 탈 요량이었는지도.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고향 제주로 달려가는 날이다. 어제의 분주했고 복잡했던 마음은 잦아들었다. 아직도 가슴 한편에 싸해지는 게 있다. 과감히 용기 낼 일을, 불안한 부분만을 확대했다는 후회도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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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여행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과정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문제일 뿐이었다.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 보다도 세상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야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옛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집을 지었는데 지금의 친정집이다. 그때 아버지는 단감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내 방에서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였는데 서른을 바라보는 그 나무에 감은 얼마나 많이 달렸을까? 집으로 향하는 긴 골목에는 담벼락을 중심으로 우뚝 서 있는 동백나무에서 떨어진 열매가 검붉거나 연한 갈색의 빛나는 얼굴을 내밀고 있을 텐데….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옥상에 올라가면 시원하게 보이는 한라산도 눈에 선하다.


“나 왔어.”하고 크게 소리 내어 엄마를 부르며, 현관문을 덜컹 열어 세월을 먹은 거실로 들어가고 싶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비행기를 꼭 타야겠다고 내게 약속한다. 그때는 마음이 싹트면 주저 않고 백 팩 하나 매고 아이들과 공항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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