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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06. 2022

나의 미역국

아직도 풀리지 않은 감동의 비밀은?


 

저녁에 뭘 먹지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즈음에 온갖 잡동사니와 오래 두어도 괜찮은 것을 두는 서랍을 살피는데 잊고 있던 미역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사 올 때 워낙 양이 많아서 조금씩 나눠서 먹다 다 먹은 줄 알았다.      


미역을 오랜만에 만났으니 당연히 떠오른 건 미역국이었다. 태풍이 온다고는 했지만,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날씨였지만 친구와 함께 동네 공원을 돌았다. 주말 지낸 이야기를 하다가 깍두기 담근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깍두기 했으면 곰탕은 어렵고, 소고기 미역국이라도 끓여 먹어야겠네.”

친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머릿속이 환해졌다. 그러면서 미역국에 대한 강한 끌림이 일었다.     


집으로 와서는 태풍이 은근히 신경 쓰이고 돌아오는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문득문득 스치는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시댁을 가는 일도 여전히 부담이다. 그러다 시간은 절로 지나고 오후를 보내고 나니 벌써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비도 오고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지만, 재료가 마땅치 않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미역국. 주말에 사다 놓은 국거리 소고기 한 팩이 있다. 무와 함께 끓일 생각이었지만 건더기가 충분한 미역이 더 좋다. 일찍부터 미역을 불렸다. 바짝 마른미역을 천천히 시간을 두고 잘 불려야 국이 더 맛있어진다는 걸 알았다. 당연하지만 때로는 이 과정을 대충 해서 국이 별로일 때가 많았다.      

본격적인 요리에 들어가기 한두 시간 전에 미역을 불렸다. 조금 더 하면 너무 퍼져버릴 만큼이다. 미역을 도마에 놓고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는 냉장고에 두었다. 저녁이 되어갈 즈음 소고기를 꺼내서 살짝 흐르는 물에 씻고는 엄마표 조선간장을 넣고 볶은 다음 미역을 넣었다. 그다음은 미리 끓여놓은 멸치 육수를 충분히 부었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알아서 해준다.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중간 불에서 은은하게 끓여주면 감칠맛 나는 미역국이 만들어진다. 미역이 충분히 국물에 퍼져가고 진해질 즘에 멸치액젓으로 간하고 다진 마늘을 조금 넣는다. 예전에는 깔끔한 맛을 위해 소금을 넣기도 했지만, 액젓은 그것과는 다른 깊은 맛이 있다.     


온 나라가 태풍 때문에 뒤숭숭했는데 저녁 시간은 그 반대로 알찼다. 마음이 심란할수록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일까 부지런히 움직여 멸치 아몬드 볶음에 메추리 알 장조림까지 두 가지 밑반찬을 완성했다. 미역국을 만난 아이들도 맛있다며 밥에 후루룩 열심히 먹는다. 미역국을 한 숟가락 뜨고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미역국이 떠올랐다. 그건 정말 미역국이었다.     


미역이 들어가면 미역국이란 이름은 이상하지 않다. 다른 것이 들어가게 되면 무슨 미역국이라는 다른 단어가 끼어든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국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맛을 전했던 건 그냥 미역국, 미역만 들어간 국이었다.  지금도 생생한 그 미역국은 뭐라고 해야 할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이는 듯한 신비스러우면서도 따뜻했고 나를 안아주는 그런 것이었다. 그날은 내가 엄마가 된 날이었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첫째를 임신하고서 자연주의 출산을 위해 조산원을 다녔다. 회사에서도 멀고 예약도 어려운 그곳에서 오롯이 아이를 편하게 낳고 싶었다. 그곳 선생님은 남편에게 산모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항상 부인에게 무엇을 해 줘야 하고 어떤 게 힘든지를 잘 설명했다. 엄마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결과가 어떠한지를 말하며, 때로는 나름의 비법이 있는 해법을 알려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과감한 선택이었다. 당연하다 여기지만 기본적으로 상당한 위험을 지닌 출산에서 어떤 돌출변수가 나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 용감할 수 있었을까? 먼저 그곳을 다닌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신뢰가 쌓였다. 몇 번 가보니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산부인과에 비해서는 오랜 경험으로 나오는 세심한 관심과 상황 전달은 편안함을 주었다. 임신 기간 동안 부지런히 그곳을 다녔고, 출산 역시 별일 없이 해내었다. 아이를 낳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무는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미역국 한 그릇이 나왔다. 하얀 쌀밥과 함께였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주 큰 국그릇에 미역이 가득했다. 고기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간은 적당했고 미역은 부드러웠다. 어디서 이런 맛이 나오는지 산통의 고통을 겪은 내가 고민할 만큼이었다. 아직 멀었다는 조산사 선생님의 몇 마디에 실망하고 진통하며 아이를 기다렸던 불안과 두려움의 끝이었기에 가능했던 맛일까? 둘째는 동네에서 가까운 산부인과 병원에서 낳았기에 이런 경험은 그때 딱 한 번으로 끝났다. 그래서 미역국의 비밀을 아직도 풀지 못했다.      


그 후에 내가 먹은 미역국은 셀 수 없이 많다. 소고기 미역국이 횟수로는 으뜸이었다. 더불어 제주도에서 특별한 날에 먹는 옥돔 미역국, 바지락, 새우, 조개, 들깨 등등 여러 종류의 미역국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그때의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은 만나지 못했다. 첫 출산이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끝내고 난 후의 첫 음식, 미역국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나를 품어주었다. 그건 엄마의 품보다도 따뜻했다. 우리가 가끔 어떤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도 이런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미역국을 두고 옛 기억이 선명해지는 건 내가 그때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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