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Feb 15. 2023

허전해서 배추전

가볍게 풍성한 식탁

언제나처럼 아침을 준비했다. 어제저녁에 먹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기로 했다. 매일 새로운 찬을 내놓는 일은 단순하지만 어렵다. 겹치는 음식일지라도 며칠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고, 손이 많이 가는 건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어제저녁에는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시래기나물과 연한 속 배추를 넣은 된장국을 끓였는데 한 끼는 충분할 정도로 남았다. 밥만 새로 지었다. 식탁에 하룻밤을 지낸 음식들을 올려놓다 보니 허전하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불쑥 나선다. 그럼 뭔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마침 가까운 곳에 비닐에 담긴 노란색 배추가 보인다. 망설이지 않고 배춧잎 몇 개를 뜯어서 씻어 내었다. 배추 전을 부치기로 했다. 과거에 머물렀던 찬과 방금 한 것이 만나면 그런대로 괜찮은 식탁이 될 것 같다.     


배추전은 손쉽게 빨리 조리할 수 있는 메뉴로 최적이다. 부침개 가루가 담긴 플라스틱 통에 배추를 담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흰 가루 옷을 입혔다. 너무 뻑뻑한 해서 물을 조금 넣어 반죽을 만들었다.     

아침 배추전

이번에는 계란을 하나 깨트려 넣었다. 다른 도구 필요 없이 가장 편리한  손을 들어 가루와 배추, 계란이 함께 어울리도록 힘을 주어 버무렸다. 팬에 카놀라유를 적당히 두른 다음 배춧잎을 적당히 펼쳐 놓는다.   

  

밀가루옷을 입은 배춧잎 대여섯 개를 넣으니 팬이 꽉 찼다. 배추는 생으로 먹어도 달콤해서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살짝 갈색이 돌 즈음에 뒤집고는 다시 비슷한 시간을 들여 지져내었다. 


음식을 만들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무리 애써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생기를 잃어 숨이 죽은 모습은 숨기기 어렵다. 아침은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가족들이 밥을 잘 먹든 그렇지 않든 간에 칙칙한 식탁은 반갑지 않다.     


이때 더할 수 있는 게 채소가 주재료가 되는 음식들이다. 고기는 익히는 시간도 걸릴뿐더러 부담스럽다. 아침부터 특유의 향을 온 집안에 풍기는 것도 그러하다. 상쾌하게 시작하고픈 그때에 고기를 만지는 촉감 또한 그리 반갑지 않다.     


가볍지만 실망스럽지 않은 정도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초록이거나 여러 색을 지닌 채소다. 그것 또한 단순하지는 않다. 냉장고에 색색의 채소를 갖추는 것 역시 세심히 관찰과 채워놓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어렵게 생각하면 언제나 쉽지 않다. 그냥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내가 종종 이용하는 것은 갖은 재료들을 한데 모아서 전을 만드는 것. 그때마다 생각보다 큰 기쁨을 줄 때가 많다. 이번 배추전이 그랬다.     


더하는 일보다 줄여가는 일상을 그리는 중이다. 식탁에서도 이런 생활을 펼치려 한다. 그럼에도 아쉬울 때는 배추와 감자, 무, 양파, 파프리카, 시금치 등을 불러와 함께 어울려 맛있는 한때를 보내려 한다.     


아침밥은 소박하지만 작은 정성이 머물렀다. 접시에 배추전이 아직도 남아있다. 계획했던 것과 달리 새로운 무언가를 올려야 할 때 바로 꺼내놓을 수 있는 것. 그런 음식들이 익숙하고 편안하다. 오늘 밥상을 같이한 남편과 아이들은 모르는 배추전에 대한 속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사리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