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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22. 2023

아침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말하며 답을 찾아가는 길

아침부터 집이 요란했다. 막내와 매일 만나 등교하는 친구가 아파서 학교를 하루 쉰다는 연락이 왔다.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진다. 마음에 없는 과목으로 시간표가 짜여 있는 날이고, 방과 후 수업인 음악 줄넘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입이 부풀어 올랐다.     


아이가 계속 얘기한다. 반에서 친한 친구도 편도가 부어서 학교에 못 올 것 같다고 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냐며 화가 가득 차 있다. 언제나 밝고 즐거운 아이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니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말에 무어라 적절한 답을 내놓기도 어려웠다. 그냥 몇 분을 일을 하며 계속 들었다. 아침밥을 먹던 남편도 그냥 묵묵히 밥을 먹을 뿐이다. 그렇게 얼마가 흘렀을까 아이가 조용해지면서 휴대전화를 들어 클래스팅에 올라온 급식메뉴를 살핀다.     


실컷 떠들고 나니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나 보다. 아이 얼굴은 여전히 그늘이 졌지만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친구가 함께하지 않으니 평소보다 늦게 집을 나서겠다며 한참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 나갔다.     


아이의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 이전에 남편 또한 내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회사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퍽 답답했는지 관련 내용이 든 자료 한 장을 보여주었다. 그간의 사정을 열심히 설명했다.     


처음에는 원망 어린 말투였지만 설명하면서 감정이 조금 잦아들었다. 목소리도 안정을 찾아갔다. 난 그냥 “그래” “속상했겠네” 정도의 추임새를 넣었다. 어제저녁까지도 별말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잘 들어주기가 가장 대화를 잘하는 것이라는 어느 유명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눈을 맞추고 가만히 앉아서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집중해서 듣기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태생적으로 여유가 넘치는 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대부분은 탁구공을 주고받듯 말을 건네기 바쁘다.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자꾸 자신의 의견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겠다는 마음이지만 실상 별 효과가 없을 때가 많다. 대부분 사람은 문제의 원인과 해결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단지 현 상황에 매몰되어 바라보기 어렵고, 직면하는 일을 주저해서 타인을 앞세워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뿐이다. 나도 종종 힘든 일이 있을 때 동생과 이야기를 한다. 한참 듣고 있던 동생은 어느 지점에서 “그런데 언니가 왜 그런 거 같아?”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건 어느 집을 찾아왔는데 대문을 열어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맴도는 모습과 닮았다. 내가 알고 있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것을 말로 하면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설령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마음은 전보다 가벼워진다.     


이 모든 건 잘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가능한 일이다. 말을 하면서 정리가 되고 스스로 알아가는 것. 그래서 잘 들어주는 사람이 최고의 이야기 상대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아침의 상황을 보내나니 내가 한 것은 별로 없는데 남편과 아이가 어느 정도 평정심을 회복한 듯하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에게 쉼 없이 말해 놓고 나서 담담히 답을 혼자 알았던 이들이 잘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대부분은 답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건 말과 다른 현재 상황, 심리적 불안감이 이런 것들을 가로막는다.  

   

다른 이보다 더 많이 얘기해야 좋을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꺼낼 때 혼자 으쓱했다. 그렇지만 요즘에 드는 생각은 말하기보다 듣는 일에 진심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종종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와 비슷한 고민이 있는 경우에는 위안을 얻는다. 가끔은 헤아리기 어려운 삶의 고비를 겪으면서도 현재에 이른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비슷한 상황을 대하는 여러 다른 시각과 태도에서 미처 내가 다가가지 못했던 지혜를 만난다. 그때마다 말하기보다 듣는 일의 탁월함을 생생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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