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과 존재감 사이
동네 밤 산책에 나섰다.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불현듯 빵을 구워야겠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연휴에 아침밥은 늘 밥이었다. 뭐라 하는 이도 없는데 혼자 새로운 걸 찾는다. 집에 오자마자 밀가루를 꺼냈다. 얼마 전부터 우리 밀을 사용하는데 생산지를 보니 구례라고 쓰여있다. 반가움과 더불어 맛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8시를 훌쩍 넘겨 9시간 다 되어갈 때 반죽을 준비했다. 대강 시간을 계산해 보니 발효하는 것까지 더하면 자정을 지나서야 빵이 다 될듯했다.
조금이라도 빨리해 볼 요량으로 손이 빨라졌다.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1분 데우고 나서 설탕 한 숟가락을 넣고 섞는다. 그다음은 드라이 이스트를 티스푼으로 하나 반을 넣었다. 달걀 하나를 깨뜨렸고, 올리브유를 두 숟가락을 더한 다음 거품기로 힘껏 저었다. 이제 스테인리스 볼에 있는 밀가루와 액체의 그것이 섞이도록 했다. 제빵 유튜버 얘기처럼 100번 반죽해 주었다. 3분 정도를 하면 이 과정이 지난다고 했다. 통밀가루라 그런지 연한 갈색을 띤다.
반죽하고 나서 한 시간을 발효시켰다. 씻고는 침대에 누워서 휴대전화로 뉴스를 검색하는데 눈이 스멀스멀 감긴다. 언제 잠드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반죽에 가스를 빼주고 모양을 잡아서 틀에 담았다. 한 시간 후에 구워야 하는데 깨 보니 구워야 할 시간을 훌쩍 넘긴 자정이다.
큰아이 방에만 불이 켜져 있을 뿐 다른 이들은 이미 잠이 들었다. 다른 집에 혹시 오븐을 여닫는 소리가 소음이 될까 망설이다 결단을 내렸다. 180도 오븐에 30여 분을 구웠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빵을 구워보기는 처음이다. 방에 있던 아이가 나온다. 뭔지 모르는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것. 식빵이 구워진다는 신호가 꽉 닫힌 문을 통과할 정도로 강력했던 모양이다.
오븐 타이머에서 '띠링'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열어보니 빵 표면은 진하면서도 투명한 느낌의 갈색이다. 손이 대일만큼 따끈한 식빵 두 개를 꺼내었다. 시계는 새벽 한 시 반을 넘기고 있다. 시작한 일을 밀리지 않고 해냈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뒤로 미루는 평소의 나와는 다른 모습에 혼자 잠깐 놀랐다. 단 몇 시간 사이에 어제와 오늘이 이어진 날에 빵 굽기가 왠지 매력 있었다.
저녁 무렵 식구들에게 내일 아침에 빵을 먹자고 얘기하면서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이 한편이 있었다. 확신하지 못하면서 즉흥적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책임지게 되었다. 식빵을 굽는 시간은 내일을 위한 오늘의 일이었다. 얼마 전부터 집에서 종종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아이들 간식으로 때로는 한 끼 밥으로 통한다. 직접 빵을 굽기 전까지는 샌드위치는 집에서 일종의 패스트푸드 같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젠 가장 천천히 먹는 오늘과 내일로 이어지는 1박 2일의 음식이 되었다. 빵을 향한 움직임의 궁극적인 목적은 샌드위치를 위한 출발이었다. 아침에는 빵 사이에 들어갈 여러 가지를 머리에 그리고 다시 도마 위에서 펼친다. 언제나처럼 빼놓지 않는 토마토와 달걀, 과일, 채소를 하나씩 꺼낸다.
우리 집 샌드위치가 탄생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매번 다른 표현으로 감탄한다. 빵을 집에서 만들었다는 데서 출발하는 우리 집만의 맛을 느끼는 듯하다. 그들의 모습은 내 마음의 허전함을 살며시 채워준다.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만족감, 이것이 깊은 밤 빵을 굽게 한 원동력이었다.
혼자 기쁨을 찾고 싶어서 때로는 어떤 종류의 빵에 도전할지 고민한다. 잘못하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서 해보라고, 꾸준함은 어떤 형태로든 결실을 가져다줄 거라며 애써 정당화할 때도 있다. 매번 느끼지만 내 장점을 기본에 두고 무엇을 할 때가 다른 생각 혹은 적극성이 발현되는 듯하다.
빵은 아침에 각자의 손을 거쳐 만든 자신만의 샌드위치로 다시 태어났다. 남편과 막내가 언제 빵을 다 구웠냐며 놀란다. 내가 반죽하는 것을 어제저녁에 봤지만 내 일이 아니니 그냥 지나쳤던 모양이다. 누가 알건 모르건 내 일을 하는 건 나를 지키는 중요한 과정이다.
끊임없이 존재의미를 찾으려는 것 또한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주부의 일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사이에 두고 빵을 구웠다. 그것을 통해 어제와 다른 하루를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열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