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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08. 2024

부풀지 않은 빵

월요일 잘 보내기 

월요일은 복잡하지만 좋은 날이다. 주말 동안 남편, 아이들과 보내는 일은 별 것 없으면서 별것이다. 평일에는 서로가 다른 시간을 보내다 이때는 같이 머문다. 서로가 한 마디씩만 해도 서너 번의 말이 오가니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다 조용해지기를 반복한다. 자동정화장치가 있는 것처럼 누가 나서 조율하지 않아도 절로 조절이 된다. 가끔 이런 게 신기하지만 서로 갈등을 피해 가려는 노력이 작용하는 듯하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면 내게 비교적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아침은 어제보다 소란스럽지만 잠깐이다. 여유가 생기면 돌아올 밥시간을 생각한다. 먹는 일에 진심인 내게는 중요한 일이다. 아주 작은 나만의 기념식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휴일을 화내는 일 없이 그런대로 열심히 보냈다는 의미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얼마를 고민하지 않아도 빵이 생각났다.      


빵 굽기가 주는 의미와 연결되었다. 잡념을 없애면서 적절히 쉬게 하는 것. 처음 시작할 때의 의욕은 만드는 과정에서 작아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여긴다. 매번 잘 부풀지 않아 실망하면서도 다시 밀가루를 만지작 거린다.      


빵이 떠오른 건 얼마 전 지난 늦여름에 담아둔 자두 청이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어서다. 냉장고를 정리하면서도 맨 아래 칸에 놓여 있어서 보지 못했다. 상했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때의 시큼한 맛은 사라지고 적당히 단맛이 들었다.    

 

이것을 빵에 올려 먹기로 했다. 운동에서 돌아오자마자 반죽에 들어갔다. 전자레인지에 30초 데운 우유에 설탕 한 숟가락을 넣고 잘 저은 다음 인스턴트 이스트를 넣었다. 그리고 식초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이렇게 하면 빵이  잘 부풀고 부드럽다는 어느 유튜버의 레시피를 알게 된 이후는 종종 활용한다.     

자두크림치즈 샌드위치

반죽에 식용유를 두 숟가락 넣고 매끈해질 때까 치댄 다음  적당히 따뜻한 오븐에서 한 시간을 발효시켰다. 그리고 반죽의 가스를 빼고 두었다가 한 시간을 빵틀에서 부풀게 했다. 그런데 역시나 오늘도 상황이 별로다.   


얼만전에는 빵을 잘 굽기 위해 제빵의 실패 원인을 분석한 책을 빌렸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보는 순간 이것만 보면 잘할 수 있을 거라며 기대를 가졌지만 집에 와서 읽고 있으니 은근히 복잡해서 잘 정리되지 않았다. 솔직히 이건 핑계이고 열심히 읽어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그때 알았으면 오늘은 괜찮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다. 매번 생각과 실천이 따로 움직임으로 인해서 생기는 습관 같은 불협화음이다.


빵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온 건 그만큼 스트레스가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구에게 보이기 어려운 빵이지만 이것을 만들고 나면 나름 기분이 괜찮다. 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리고, 구워지는 동안 퍼져 나오는 향이 포근해서 좋다. 


다른 음식에 비해 빵은 시간에 관대한 것도 매력이다. 바로 반죽해서 굽기도 하지만, 발효가 필요한 경우는 기다리는 동안 충분히 다른 일이 가능하다. 휴대전화 알람 기능을 설정해 놓으면 편리하다.


빵이 완성되는 동안 집 안 청소와 쿠션과 소파 커버를 빨았다. 아이 방 책장에서 읽지 않는 책을 빈 상자에 담아 정리했고, 주변에 쌓인 먼지도 닦아내었다.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다가 빵이 되어가는 모습을 오가며 확인한다. 뭔가 부족하다 느낄 때 나를 채워주는 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그때다. 


3시간을 훌쩍 넘겨 빵이 다 됐다. 식빵을 염두에 두었지만, 이번에도 산으로 가버렸다. 럼에도 거기서 멈추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빵을 세 조각 잘라내어  크림치즈를 바르고 설탕에 절였던 자두를 올렸다. 온기가 흐르는 오픈 샌드위치다. 남은 빵은 프렌치토스트나 허니브레드를 만들면 단점은 개선되면서 그런대로 괜찮을 듯하다.     


빵이 통통하게 잘 부풀었으면 좋으련만 어설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순간 내가 식생활 독립자라는 엉뚱한 논리를 펴본다.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건 잘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설명이었다. 


"빵을 만든다고? 그건 원래 사 먹는 거야."

겨울에 만났던 친구에게 빵 굽는 얘기를 했더니 돌아온 반응이다. 빵이 생각나면 제과점에 가는 게 자연스러운데  난 만들어 먹는다. 억지스럽지만 이런 엉뚱한 자신감이 좋을 때도 있다. 내게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음식을 준비하고 내놓는 것.  매일 하는 일이지만 나를 향해서는 생략됐던 것을 찾아서 실천할 때 어제와 다른 날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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