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만두.”
갑자기 튀어나왔다. 방학이라는 건 아이들에게 선물이다. 뭔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맛난 음식은 우리 집 아이들이 매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일 듯하다. 내 착각일지도 모를 일이다. 때론 엄마의 기분이라는 시계에 따라 잘 굴러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작은 잔치 아닌 잔치가 열린다. 아침부터 큰 아이가 만두를 만들자고 한다. 추운 겨울이면 한두 번은 아이들과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그리 복잡할 것도 없지만 간단치는 않은 일이기에 순간 잠깐 망설였다. 시작하면 아이들과 손을 모으니 한 시간 이내로 끝낼 일이었지만 거기까지의 거리가 마음에 걸렸다. 마음이 편해지고 싶었는지 대답이 안 나왔다.
“그래 해 먹자. 함께 만들면 좋지.”
이렇게 답은 하면서도 마트에 가면 몇천 원이면 여러 종류의 만두가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귀찮음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엄마잖아. 애들과 함께하는 때가 얼마나 되겠어. 만들지 뭐.’
아침부터 바빠졌다. 오랜만에 공원 걷기에 나섰다. 40분을 돌고 마트로 가서 만두에 필요한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고는 집으로 왔다. 10시가 됐다. 집마다 다양한 만두 비법이 있지만 가족들은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적절하게 조합한 김치 고기만두를 좋아한다. 몇 포기 안 남아 아껴두고 먹는 지난해 김장김치를 꺼냈다. 시큼하면서도 묵은향이 코끝에 맴돈다. 애들에게 마늘 까는 일도 시켰다. 먹는 게 보약이라는 생각에 몸에 좋다는 마늘을 넣고 고기 냄새도 잡을 생각이다. 여기에 오늘의 특별 손님인 무말랭이를 미지근한 물에 불렸다. 가을 찬바람을 맞아서 쪼그라든 녀석은 물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탱탱한 몸을 자랑한다. 평소에 무침을 종종 해 먹지만 애들에게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오늘은 잘게 다져 넣어서 몸에 좋다는 비타민씨를 보충시킬 계획이다.
“엄마 이거 무슨 냄새야? 묘하네.”
큰 애가 방에 있다가 나온다. 무말랭이 특유의 향이 온 거실을 휘감는 까닭이다. 하얀 무의 색깔이라고 하면 맞을까. 시간이 덧입혀진 무가 숨겨 놓았던 독특한 냄새다. 연한 갈색의 무엇이 적당히 타는 듯한 시골의 향기다. 애들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숙주를 살짝 데치고 차가운 물에 행군 다음 다졌다. 고기는 마늘과 매실, 간장, 소금, 후추를 넣고 치댔다. 당면과 두부 부추는 생략했다. 재료가 많아지면 풍부한 맛을 낼 수도 있지만 준비과정이 번거로울수록 몸은 지치고, 즐거워야 할 시간에 스트레스를 만드는 일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간단하지만 적당히 맛을 낼 수 있을 정도면 만족이다. 막상 재료를 볼에 담아놓으니 아쉬웠다. 만두 만들기를 망설였던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부끄러웠다. ‘뭐 어때 맛있으면 그만이지. ’ 살짝 별로인 만두가 탄생할까 봐 마음을 졸이면서도 스스로 위로했다.
거실에 신문지를 펴고 아이들과 둘러앉았다. 피를 사서 하는 까닭에 속만 준비되면 만두를 만드는 일은 속전속결이다. 그동안 몇 번을 경험한 까닭에 아이들의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다.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에 물을 충분히 빼주지 않아서 만두피와 속재료가 만나는 순간 국물이 흐르는 일도 벌어졌다.
“엄마가 오늘 정신없이 하느라 물을 꼭 짜지 않았나 보다. 그냥 하자. 어쩔 수 없어.”
애들에게 뭐라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이들은 그저 무엇을 만드는 게 즐거운 눈치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혼자만 좌불안석이었다. 쟁반에 만두가 쌓여가니 보람 있다. 몇 분을 하고 있으려니 만두 속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만화영화를 보듯 만두가 완성되었다.
만두 여덟 개를 가지고 군만두 만들기에 나섰다. 팬에 적당량 기름을 넣고 약한 불에서 익혔다. 어느 음식이든 불 조절이 중요하지만 특히 만두는 센 불에서는 금방 타버린다. 갓난아기를 다루듯 천천히 시간을 두었다. 아랫면이 노릇노릇 익어간다는 신호를 보내면 반대편으로 뒤집는다. 그리고 화룡점정처럼 맨 마지막에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촉촉하고 바삭한 맛을 원하기에 빼놓을 수 없다. 녹말가루 한 숟가락에 세 배 정도의 물을 넣어 잘 섞이게 하고 만두 위에 뿌려준다. 자칫 딱딱해지는 만두피가 적당한 수분을 머금어 부드러우면서도 아삭한 맛과 속 재료가 고루 익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상을 펴 놓고 설레며 기다린다. 드디어 큰 접시에 만두가 나간다. 아이들의 눈은 커지고 손은 바빠진다.
“엄마 역시 이 맛이야. 사서 먹는 것과는 비교가 안돼.”
“엄마 밥하고 같이 먹으면 더 좋을 거 같아. 적당히 간이 되어 맛있네.”
한 번은 거쳐야 하는 품평회 시간이다. 오늘도 그럭저럭 잘 지났다. 매일 같은 말이다. 집 맛이 살아있다는 것. 특별하지 않은 그것이 더 크게 다가온다. 순간 으쓱해진다. 집에 있는 엄마의 역할을 해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진다. 나도 한입 먹었다. 김치의 짭조름하면서도 시간을 먹은 맛에 고기와 무말랭이의 쫄깃함이 무리 없는 조화다.
내가 만두를 처음 접했던 게 언제였을까. 설거지를 하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3~4학년이 아니었을까 싶다. 서귀포시장에 갔던 엄마와 오빠가 누런 봉투에 만두 튀긴 것을 사 왔다. 작은 교자 만두였다. 신기한 생각에 처음 집어 들었고 맛이 묘했다. 고기가 들어간 것 같은데 조미료 맛이 강했다. 그 후로 동네 슈퍼에도 냉동만두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아주 가끔 맛보는 음식이었다. 일 년 농사의 하이라이트인 귤 농사가 끝날 즈음 엄마를 졸라 만두를 한번 만들었다. 피도 밀가루를 밀어 직접 만들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제주 전통 스타일로 무를 채 썰고 데친 것에 쪽파를 놓았으니 어린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간단하면서도 몸에 좋은 힐링 음식이었다. 지금은 그 만두가 그립다.
만두는 여러 가지가 어우러지기에 어느 것 하나 튀는 일은 위험하다. 물론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 어떤 하나만을 위한 만두라면 괜찮겠지만 말이다. 만두 속에 담기는 것마다 잘 씻고 수십 번의 칼질을 해야 한다. 서두른다고 빨리 될 일도 아니고 너무 천천히 해서도 재료 본연의 맛을 잃어버리기 쉽다. 적당한 속도와 끊김 없이 이어지는 연속성이 있어야 가능한 요리다. 고기가 없다고 해서 김치가 떨어졌다고 해서 못할 이유도 없다. 그저 집에 있는 재료들을 식구의 입맛을 고려해 적절히 조화시키면 될 일이다. 어려울 수도 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 여러 모습과 다양한 맛의 만두가 탄생할 수 있다. 맘 가는 대로 하면 세상에 유일한 만두도 나올 수 있는 열린 음식이 아닐까.
아이들은 만두를 먹고 1월 21일 목요일의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맛보았을 거라 짐작해 본다. 나는 조금 거들었을 뿐이고 적극적으로 나서 준 아이들이 주인공이었다. 아이들이 고맙다. 재잘대며 만두를 만들었던 한때를 나름의 보물상자에 간직하면 좋겠다.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도 겨울날 이 시간을 되뇌며 만두를 만들까? 만두를 만들며 엄마가 되었다. 함께 밥 먹는 하루가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