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동네를 산책했다. 예정에 없던 30여 분을 걷게 된 건 빵집 때문이었다. 틈틈이 옷을 물려주는 동네 안경집 사장님께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 빵을 사러 가던 길이었다. 신호등 앞에서 불이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빵집이 깜깜하다. 눈을 크게 뜨고 살피니 돌아오는 15일에 다시 문을 연다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허탈해지는 순간, 살짝 기분이 안 좋아지려는 찰나다. 어쩔 수 없이 기왕 집을 나섰으니 충분히 걸어 보기로 했다. 돌고 돌아 농협 로컬푸드에 갔다. 빵 대신 한창 맛있는 딸기 한 상자를 사고 천천히 걸었다. 무엇이 쫓기듯 걷는 아침과는 달랐다. 내 앞에 가는 사람들이 눈 앞에 다가온다. 공원에 서너 그루 있는 산수유 나무에 꽃망울이 맺힌 사실도 알게 됐다. 서서히 점퍼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땅의 기운이 포근하다. 경칩이라는 절기와 딱 들어맞는 날이었다.
10시를 조금 넘길 무렵 엄마로부터 택배가 도착했다. 하우스가 아닌 과수원에서 자란 한라봉 한 상자와 배추, 무, 브로콜리, 우리 집 담벼락 밑 건강한 알로에, 엄마가 정성스레 다듬어 놓은 쪽파까지 또 한 상자 가득이었다. 문 밖에 놓인 상자를 들어 집으로 가져올 때는 여느 때처럼 엄마가 뭔가를 보냈구나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건 봄이었는데 알아채지 못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은 당연히 온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나무를 보고, 마트에 나와 있는 빨간 딸기와 싱싱한 채소 들을 보면서는 달리 바라보게 되었다. 겨울에도 하우스에서 열심히 땀을 흘린 농부의 땀방울이 모여 매서운 추위를 날려 보내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하는 힘이 되었다. 엄마처럼 매일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묵묵히 다 받아주는 과수원의 푹신한 땅과 끊임없는 대화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배추씨를 뿌려 싹이 돋고 커가도록 뭉근한 관심을 멈추지 않은 결과다. 신발이 푹푹 빠질 만큼 상당한 높이의 눈이 쌓여 있어도 살아 있었고 따뜻해지는 요즘에는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택배 상자 안 여기저기 벌레 먹은 잎이 가득한 배추 몇 포기와 케일이 그랬다.
브로콜리는 집 앞마당에서 자란 튼튼한 녀석들이 다 모였다. 잘 자라다 못해 비만이 걱정되는 어린아이처럼 통통하다. 현관문을 열고 바라만 봐도 어떻게 커 가는지 알 수 있는 그 곳. 편평하고 햇빛 잘 드는 그곳에서 싹을 틔우고 잎이 나고 커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얀 겨울을 잘 보낸 덕에 내 앞에까지 도착했다. 한동안은 브로콜리 걱정이 없겠다. 한라봉은 여기저기 못난이들이 모였다. 하우스 안에서 곱게 자라지 않고, 제주의 몰아치는 거센 바람을 견딘 까닭이다. 껍질은 힘을 주어야 벗겨질 만큼 단단하다. 몇 번의 눈보라와 여름 태풍같이 쉬지 않고 내리는 비에 맞서 살아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러다 보니 튼튼하다는 증거다. 입에 넣어 보니 달콤함은 절정을 달리고, 야생의 맛이 더해져 시원하다.
내 팔 길이 정도나 되는 우리집 터줏대감 초록 알로에도 함께 왔다. 아무리 따뜻한 남쪽 섬 제주지만 가끔 휘몰아치는 강추위는 강원도 두메산골 못지않을 만큼 상당하다. 어떻게 그 시절을 탈 없이 보내고 이리도 컸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언제나 담벼락 밑을 집 삼아 살아가기 20년이 다 되어가는 녀석이다. 그러니 땅속 깊은 곳으로 뿌리내려 어떤 상황에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을 터다. 아침마다 건강주스를 갈아먹는다는 걸 잘 아는 엄마의 사려 깊음이다. 탱탱한 알로에 잎 속에는 수분이 가득 담겨 가위로 조금 잘랐을 뿐인데도 끈적끈적한 액이 흘러나온다.
봄이 우리집에 놀러 온 것처럼 포근해진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택배 잘 받았어요. 뭐를 많이 보냈네. 잘 먹을게요.”
“집에 있는 거 보냈는데, 그 브로콜리는 너무 많이 커버렸다. 데쳐놓고 냉동실에 두었다 먹고, 한라봉은 모양은 그래도 맛은 좋다.”
과수원에서 전지 작업을 하던 엄마는 목소리가 밝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통화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봄은 엄마만의 전쟁터다. 그 넓은 과수원을 오가며 나무를 돌봐야 하는 농부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대충 한다고 하지만 나무 한그루를 대할 때도 나름의 정성이 필요하다. 어느 가지를 잘라야 귤이 잘 열리고 나무가 건강해지는 지를 고민하고 살펴야 한다. 평생의 일로 하다 보니 몸이 먼저 알아서 행한다. 하지만 지극한 수고로움이 함께 해야 가능하다.
봄이 우리 집에 온 이유를 찬찬히 알게 된다. 엄마의 사랑이었다.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쉬지 않는 기도가 함께 왔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택배 두 상자에 봄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날이다. 하루가 다르게 따듯해지는 날씨처럼 어느 순간에 그 불안은 최고조를 이룬다. 마음은 가볍지만 무겁다. 그럼에도 선뜻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택배 상자 역시 베란다 김치냉장고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별일 아니지만 여러 가지를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건 또 다른 일로 다가온다. 마치 내가 삶에서 해야 할 일을 잠시 뒤로 미뤄두는 것과 같다. 오늘이 가기 전에 상자를 비우리라고 마음먹는다. 그래야 봄날의 부엌에서 천천히 느리지만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 듯하다. 봄은 그저 오는 계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