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만 그루 단풍 나무 가득한 숲
경주는 가을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대릉원과 불국사의 단풍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2023년 11월, 반세기 동안 연구 목적만으로 굳게 닫혀 있던 숲이 시민에게 개방되며 경상북도 제1호 지방정원 ‘경북천년숲정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이 정원은 이제 막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하며 경주의 ‘신상 단풍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경북천년숲정원은 경주시 통일로 367에 자리하며, 축구장 46개와 맞먹는 33ha의 대지에 910종 54만여 본의 나무와 화초가 자란다. 특히 가을철 이 숲은 단순한 단풍놀이가 아닌 거대한 색채의 교향곡을 펼친다.
그중에서도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가을 햇살을 받아 주황빛으로 물드는 잎사귀가 터널을 이루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길을 걷는 순간, 발걸음마다 계절의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숲길 끝에 자리한 ‘거울숲’ 습지원은 이곳의 상징적인 포토 스폿이다. 외나무다리에 서면 숲과 하늘,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수면에 반영돼 데칼코마니 같은 장면이 완성된다.
주말에는 이 장면을 담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기도 한다. 경주의 은행나무길이나 보문단지의 세련된 풍경과 달리, 연구림 특유의 야생성이 더해진 자연스러움이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천년숲정원은 단순한 수목원이 아니다. 경주의 다섯 명산과 세 개의 물길을 모티브로 설계되었으며, 암석원·겨울정원·천년의 미소원 등 18개 테마 정원이 방문객을 맞는다.
단풍나무, 너도밤나무, 칠엽수 등 다양한 수종이 시차를 두고 물들며 연출하는 입체적인 색채는 단일 수종의 단풍 명소에서 느낄 수 없는 복합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모두 무료다. 다만 단풍 절정기 주말에는 오전 일찍 방문해야 주차가 수월하다. 운영 시간은 3~10월 오전 9시~오후 6시, 11~2월 오전 9시~오후 5시이며, 폐장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하다. 1월 1일과 설·추석 당일은 휴무이며, 반려동물과 전동 이동장치 출입은 제한된다.
경북천년숲정원은 오랜 연구와 자연의 시간이 빚어낸 공간이다.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낯설지만, 바로 그 점이 더 특별하다.
인파에 치이지 않고 천년고도의 숨결과 함께 가을의 진짜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곳. 이번 여행에서 뻔한 경주 단풍 코스 대신, 색채와 이야기로 가득한 이 숲에서만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경주 가을’을 경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