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년 제방 위에 피어난 황금빛 숲길
가을의 숲은 대개 붉은 단풍으로 기억되지만, 담양의 가을은 그와는 전혀 다른 빛깔로 사람을 맞이한다. 담양 관방제림은 붉은빛 대신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의 대표적 명소로, 370년의 세월을 간직한 나무들이 장대한 터널을 이루고 있다.
2km에 걸쳐 이어지는 이 숲길은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조선시대 재난 극복의 지혜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제방을 지키기 위해 심어진 나무들이 세기를 넘어 지금의 숲으로 성장한 것이다.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일원에 자리한 관방제림은 ‘관방제’라는 이름 그대로, ‘관에서 쌓은 제방’ 위에 조성된 숲이다.
1648년, 조선 인조 26년에 담양부사 성이성은 매년 반복되던 수해를 막기 위해 담양천을 따라 거대한 흙 제방을 쌓았다.
그러나 흙만으로는 물살을 견디기 어려워 제방 위에 나무를 심어 땅을 고정하고 물의 힘을 분산시켰다. 이 실용적 조치가 훗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꼽히는 관방제림의 시작이었다.
관방제림의 숲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이유는 이곳에 뿌리내린 나무들의 종류에 있다.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 뿌리가 깊고 물에 강한 푸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가 심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령 300~400년에 달하는 거대한 고목 약 180여 그루가 빽빽히 자라며 2km의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면 이 나무들이 내뿜는 고요한 황금빛이 숲길을 가득 채우고, 수백 년의 세월이 빚은 기품과 생명력이 그 안에서 고요히 흐른다.
관방제림은 단순히 오래된 숲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기술과 철학이 고스란히 남은 생생한 역사 현장이다. 1991년 국가로부터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며 역사적·생태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한 2004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숲으로 자리매김했다. 재난 방지를 위한 한 관리의 지혜가 세기를 넘어 오늘날 국가의 자산이자 국민의 쉼터가 된 것이다.
관방제림은 담양의 다른 명소들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로 맞은편의 죽녹원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나오며, 이 황금빛 터널은 곧 푸른 대나무숲으로 이어진다.
조금 더 걸으면 붉은빛이 인상적인 메타세쿼이아길이 이어져 담양의 가을을 ‘황금빛–초록빛–붉은빛’의 삼색으로 완성한다. 입장료나 주차료 없이 24시간 개방된 관방제림은 누구나 자유롭게 걸으며 그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올가을, 화려한 단풍보다 깊은 울림을 원한다면, 370년 전의 지혜가 만들어낸 이 황금빛 숲길을 걸어보는 것이 가장 담양다운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