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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Sep 11. 2020

아직 그리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별 뒤에 남은 그리움만

Aug 30. 2020



장마가 끝난 뒤 본격적인 무더위가 20일 넘게 기승을 부린다. 8월 마지막 일요일의 오전이지만 벌써부터 내 몸은 열병처럼 끓어오르고 머리 위에 떨어지는 햇빛은 무서우리만치 뜨겁다. ‘대프리카’의 여름 한낮은 정말 대단하다. ‘대프리카’는 아프리카의 날씨처럼 지나치게 더운 여름철 대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대구가 오죽 더웠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동네 슈퍼로 향했다. 슈퍼에서 필요한 물건을 몇 가지 챙겨 더운 날씨지만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설이나 추석 명절이 아니더라도 보고싶거나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면 어디든지 바로 달려가는게 당연하다. 찾아 갈 추모공원은 자동차로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니까 그리 어렵게 시간을 내지 않아도 갈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아들, 며느리, 외동 손녀와 함께 그 사람을 만나러 갔다. 명절이 아니라 공원묘지는 한적하여 침묵 속에 잠긴 듯, 가끔씩 들리는 새소리가 정적을 깬다. 이따금 씩 자동차가 멈춘 자리엔 그리운 누군가를 찾아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평안한 모습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다. 공원 입구 매점에서 빨갛게 물든 조화 두 송이를 사 들고 그 사람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꽃과 향기를 좋아하던 그 사람을 생각하며 생화를 살까 하는 마음이 항상 있지만 오늘도 예쁜 조화를 고르기에 바쁘다. 향기없는 조화야 그기서 그기지만 마음에 와 닿는 걸 찾아 이것 저것 골라본다.   


어렵게 고른 조화 두 송이를 양쪽 석조 화병에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면서, 그동안 햇빛에 탈색된 놈을 뽑아내고 남은 것과 잘 어울리게 새로 산 조화를 꽂아 놓았다. 그리고 물티슈로 검은 대리석을 깨끗하게 닦고 주변 환경을 정리해 본다. 대리석 위에 새겨진 그 사람의 하얀 이름이 그리움 되어 가슴에 와 앉는다. 나는 대리석을 포옹하듯 어루만지며 말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다. 세월이 가면 잊힐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직도 그때 그 슬픔, 그 외로움은 그대로인 것을.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 사람의 빈자리는 내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자꾸만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혼자 남았다는 것이 죄인 아닌 죄인 인양 슬픔과 외로움으로 지내 온 고통스러운 날들이 참으로 쉽게 떠나질 않는다. 아마도 이런 생각지 못한 슬픔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나도 예전엔 다른 부부들의 슬픈 이별을 만날 때 그렇게 절실한 슬픔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더욱더 그럴 것이다. 신이 있다면 왜 이렇게 공평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 하는 불평을 해본다. 이별은 슬픈 것이지만 사람이 어떻게 멈출 수는 없는 것, 외로움과 그리움만 남겨놓고 가버린 사람을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죽음이란 누가 먼저라는 순서만 모를 뿐 누구나 한 번은 겪는 필연적인 일인데도 남은 사람의 고통은 상처가 되어 가슴에 남는다. 그 사람이 부르면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 속에 녹아내린다. 오늘따라 가눌 수 없는 눈물이 자꾸 흘러내린다. 눈물 흐르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가족들도 말없이 묘비만 바라본다. 잊지 못하고 시린 가슴만 움켜쥔 체 한 동안 말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그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과 그리움의 고통이야 모두 똑같은 심정이니 침묵만이 그 슬픔을 다독이고 있었다.   

  



평소 그 사람이 좋아하던 커피 한잔, 맥주 한 캔과 몇 가지 과자 종류를 올려놓고 묵념으로 그 사람을 축원하면서 애들의 앞날을 지켜줄 것을 마음속으로 함께 빌었다. 그리고 함께했던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처음 만난 찻집에서 운명처럼 다가온 그 사람의 티 없이 맑고 밝은 예쁜 미소를 사랑했던 그 순간이 그립고, 하루가 멀다 않고 만나던 그 찻집 그 자리에 남겨 둔 수많은 이야기가 그립고, 함께 떠난 여행에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알게 해준 그 시간들이 스크린되어 지나간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리운 날들, 다시는 갈 수 없는 아름다운 날들이 한꺼번에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아 울음이 목 끝에 메여 숨이 막혔지만, 애써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돌렸다. 다시 만나자는 말만 허공에 남겨둔 체.  


달리는 차 안에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혀본다.   

다가갈 수도 볼 수도 없는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외로움을 잠시나마 떨쳐내고 온 것만 같아 가슴이 따뜻해져 옴을 느낀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그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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