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가 주는 행복한 풍경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겐 또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늦은 밤까지 넷플릭스를 보다가도 새벽 6시면 오직 나만의 시간을 위해 기상한다. 스마트폰에서는 이른 시간인데도 누가 무엇을 보내는지 가끔 ‘카톡’ 음이 울린다. 이 시간에는 궁금해도 보지 않는 것이 편하다. 어쩌다 가입해 놓은 마켓 컬리나 쿠팡에서 보내는 쇼핑 메시지가 대부분 일 테니까. 침대 곁에서 누워 자던 강아지가 눈을 뜨고 내 얼굴만 바라본다. 아침밥을 달라는 애절한 표정으로 계속 쳐다보는 눈망울이 너무 귀엽다.
“조금만 기다려, 식사 시간은 7시잖아? “
강아지가 알아듣지 못해도 이렇게라도 말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바깥은 희뿌연 안갯속에 가린 어둠으로 적막감을 자아낸다. 지금은 혼자만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오직 나만의 시간이다.
아직은 어둠이 깔린 새벽녘, 아침을 기다리며 지난밤에 잠 못 이룬 꿈속의 필름을 되돌려 본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스토리를 재편집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스마트폰으로 사진까지 찍고 하던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그때가 현실처럼 찾아온 경험이었지만 생생하던 그 꿈속의 풍경이 눈을 뜨면 희미한 안갯속에 갇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냥 잊어버리자. 꿈은 꿈일 뿐이니까. 별다른 메시지가 없는 꿈 속에서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기운을 듬뿍 안으며 나에게 주문을 건다.
“나는 글쓰기에 도전한 브런치 작가다. 글이 작품이 되는 브런치 공간에서 내 삶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며, 사람들의 가슴속에 조금이라도 위로와 행복을 안겨 주는
나의 이야기를 꺼내, 품격 있는 나만의 글을 써보자. “
세면장에 들어가 거울 앞에 서서 부스스한 모습의 나를 바라본다. 혼자서 나 자신을 감상하며 오늘 하루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해 본다. 자동 면도기로 밤새자란 거무스레한 수염을 정리하고 난 후 상큼한 향기를 품은 폼클렌징으로 세수를 한다. 자동 면도기의 윙윙거리는 기계음 소리가 정적을 뚫고 식구들의 잠을 깨울까 봐 신경이 쓰인다. 살며시 욕실 문을 잠그고 바디워시로 거품을 내어 문지르며 샤워를 한다. 날마다 글쓰기에 대한 충전과 새로운 아침을 위하여!
방 안에 들어와 창문을 연다. 맑은 공기가 방안 가득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한다. 잠깐만이라도 완전한 침묵 속에 빠져 내 인생의 풍경을 생각해 본다. 삶의 긴장을 놓지 않고 날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달려온 지난 시간들이 못내 아쉬움으로 전해져 온다. 지금까지 내가 이루어 놓은 것 중에서 행복이란 이름의 딱지를 붙여도 아무도 트집 잡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긋이 입술을 깨문다. 생각이 그곳에 멈추자 나는 아침의 고요함 속에 시간의 그림자를 태우고 서서히 번져오는 햇살을 맞으며 내 삶의 희망을 그려본다. 아직 희망은 있는가?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희망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이라고 했다. 희망은 그것이 안겨주는 기쁨이라는 앞면과 불확실성이란 뒷면을 가진 동전과 같다. 그러나 희망이 불확실하다고 희망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 버리는 순간 우리에게 설레는 미래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이면 종종걸음으로 나와 자동차나 버스,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나는 며칠 전에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한 적이 있다. 지하철 안의 풍경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모은 체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있는 듯하다. 인터넷에서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음악을 듣거나 어제 보지 못한 예능 방송이나 웹툰을 보거나, 카톡으로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날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모두 자신은 잊고 사는 것만 같다. 날마다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갈 것 같은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그것은 자기의 삶이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하는지,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를 결정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나 자신을 사랑하자. 매일 힘들다고, 아프다고,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직장에서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 집 가까이 차를 세우거나 차에서 내려 잠시나마 하늘을 한 번씩 쳐다보자. 하늘을 쳐다볼 시간도, 날마다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의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풍경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너무 고달픈 인생이 아닐까? 저녁노을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계절이 연주하는 나뭇잎의 멜로디를 들으며 행복한 감상에 빠져보는 것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우리가 가진 시간에 조금만 여유를 주어도 더 즐거워지는 삶을 맞이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