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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Jul 31. 2020

꽃은 저마다 혼자 아름답다

꽃을 보며 삶의 향기를 품다

꽃은 홀로 있어도 충분히 아름답다.


꽃은 저마다의 품은 향기와 개성 있는 빛깔을 뽐내며 자연의 조화 속에 어우러져 살고 있다. 꽃과 나무가 뿜어내는 특유의 달콤한 향기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종족번식을 위한 수정의 유혹이거나, 곤충이나 벌레로부터 열매를 지키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는 향기라고 한다. 어쩌면 식물이 풍기는 향기는 생존을 위해 그들만이 소통하는 또 다른 감정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왜 꽃들은 저마다 색깔이 다른 걸까? 그것은 꽃마다 가지고 있는 색소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색소들이 어떻게 섞이며 햇빛 중 어떤 색의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느냐에 따라, 빨강, 주황, 노랑, 분홍, 보라 등 다양한 꽃 색깔이 나타난다고 한다. 사람도 저마다의 다른 향기가 있다. 사람들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이 성격도 다 다르다. 타고난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누구는 활달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에 익숙하고, 누구는 소극적이면서 내성적이라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듯이.




살다 보면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조화롭게 살아가기란 참으로 힘들다고 생각한다. 내 뜻대로 하려는 마음이 자기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그 사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그냥 나와는 다른 , 그 사람 자체라고 인정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진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이 세상이 아름다운 건 각 개체가 가진 다름이 함께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모든 꽃도 한순간에 같이 피지 않는다. 꽃도 저마다의 주어진 환경에 따라 피는 시기가 다르다. 어떤 꽃은 잎이 먼저 피기도 하고, 어떤 꽃은 꽃이 먼저 피기도 한다. 제각기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그렇다고 어떤 꽃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주어진 종자의 특성대로 피고 지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의견이 언제나 옳고 상대방이 가진 의견이 틀렸다고 할 수 없듯이, 내가 상대와 다름을 인정할 때 다름의 차이가 빚어내는 다양성 속에서 아름다운 창조가 시작된다.

‘나’와 ‘너’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듯이, 서로 다른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며 전체의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조화 속에 '우리'라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것이다.



Chrismas Kalanchoe

몇 해 전 내가 살던 아파트 베란다에는 나 혼자서 가꾸는 정원이 하나 있었다.

정원이라기엔 좀 거창한 표현 같지만 십여 개의 화분에 각기 다른 나무와 꽃을 심어놓고 정성을 들여 키웠다. 잎을 손으로 훍터주면 레몬향이 퍼져 기분을 좋게 하는 율마, 꽃말이 '불타는 마음'이라는 안시리움 래드, 사계절 쉬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제라늄, 신비의 섬 마다가스카르 섬이 고향인 칼랑코에, 바닐라 향을 품은 함소화 등이 함께 어우러져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으로 계절을 맞고 있다. 마당이 넓은 주택이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 집을 옮기는 게 쉬운 일도 아니지만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내게 마당 넓은 주택은 하나의 꿈으로만 남겨 두었다.


어느 날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베란다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칭 식물 박사'라는 친구가,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 가면 잎 위에 꽃이 피는 식물이 있다고 하며 너무 신기하다고 헸다. 이름이 '루스쿠스 아쿨레아투스(Ruscus aculeatus)'인 이 식물은 오래전에 신문에도 소개되어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고 하며, 언제 태안 근방에 출장 갈 일이 있으면 꼭 한번 가보라고 권유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이 범상치 않는 이름의 식물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별종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작은 정원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꽃향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꽃나무 하나하나가 더 사랑스러울 뿐이다.    


Ruscus aculeatus


나는 소담한 내 정원에서 꽃나무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꽃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휴일에는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베란다 창가에 서서 철마다 변해가는 꽃나무의 자태를 보면서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멍한 생각으로 고요 속에 잠겨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동안 서 있기도 한다. 가끔은 커피잔을 탁자 위에 놓고 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리움을 달래기도 하고, 다가올 미래를 은근히 걱정하며 마음의 위안을 받기도 한다.


정원에서 자라는 꽃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참으로 신비함을 느낀다. 겨우내 죽은 듯 침묵하다가 봄이 오면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다투어 머리를 내미는 새싹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격과 함께 생명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들만의 향연을 함께 즐기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향기를 채워가고 있다.


정원은 내가 정성을 들인 만큼 내게 아름다움과 향기와 삶의 여유를 돌려주는 것 같다. 어쩌다 꽃나무 곁에 이름 모를 잡초가 자라는 것을 보고 뽑을라치면 쉽게 뽑히지도 않지만 뽑혀 올라오는 잡초는 뿌리에 흙을 잔뜩 달고 나온다. 아마도 잡초도 생명의 애착 때문에 흙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잠시나마 삶의 여유와 휴식을 찾을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공간에서 자기만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꽃나무에 물을 뿌리며 콧노래를 흥얼댄다.


꽃은 홀로 있어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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