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에게
“너 없이도 난 웃을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이 질문이 언제나 불쑥 찾아온다. 연인이 아닐 때조차도, 만남보다 이별이 먼저 달려오는 날들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헤어지는 건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거스를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안다.
그렇지만 그 헤어짐의 저릿함이 나라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오래 머물다가는 것 같다.
그건 왜일까. 단지 같은 수업을 들어서, 모임에서, 회사에서 만난 사람일 뿐인데, 마음속 구석에 피어있던 아주 작은 들꽃이 꺾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지금의 만남이 이번 생에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헤어짐이 어려운 나는 그 누구보다 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상대와 나의 안전거리에서 공감하고 교류하는 게 딱 좋다고, 그럼 마음 아프지 않게 헤어질 수 있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그렇게 항상 거리를 두고, 그게 상식이라는 듯 혼자서 선을 긋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도쿄에서였다. 한국에서 보다 훨씬 지켜야 할 선이 확실하게 보였다.
예의 있게, 매너 좋게, 그저 웃으며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만 심어주곤 나라는 사람을 꽁꽁 숨겨두며 살았었다. 외국인이라는 신분에 기대어 어차피 나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도, 그럴 필요도 없으니 되려 편했다.
그렇지만 그게 나의 오만함이라고, 하늘이 나를 꾸짖듯이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내왔다. 인생이라는 게 생각한 것과 같이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늘 변수가 생겼다.
자신을 몽골계 중국인이라고 소개했던 B는 나보다 3살 어렸다. 작은 체구에 밝고 귀여웠고, 통통 튀는 매력이 있는 친구였다. 그녀가 몽골의 드넓은 초원의 피를 이어받아서였을까? 거리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예 생각하지 못하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자신의 지난 연애사를 들려주더니, 저녁에 한잔 하러 가지 않겠냐고 했다. 우리가 소꿉친구라도 되는 것 마냥 나를 대하는 그녀의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 뒤로도 그녀는 내가 묻지 않아도 유학생 친구들의 근황과 가십을 알려주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밥 먹자고 했다. 나는 번번이 거절하기 바빴는데, 그러다가 나라는 사람에게 흥미를 잃겠지 했다.
그런 나의 예상은 아주 크게 빗나갔다. 그녀는 유학 생활 내내 곁을 맴돌았다. 나중에는 나조차도 그녀를 절친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식사 제안의 10번 중 9번을 거절한 내가 미울 법도, 싫을 법도 한데 항상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그녀가 너무도 신기해서 물은 적이 있다.
“너는 내가 무언가를 해준 적도 없고, 특별히 챙겨준 적도 없는데 나를 계속 좋게만 봐주더라.
왜 그런 거야?”라고.
그랬더니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너는 좋은 사람이 맞아. 질릴 법도 한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끝까지 들어주고, 진심으로 같이 고민해 주는 게 보였어. 말로는 거리를 두었지만,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하면 먼저 물어봐 준건 항상 너였어. 애써 거리를 두고, 무심한 사람을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들켰다. 이미 오래전에 나는 그녀에게 들킨 거였다. 어차피 기간이 정해져 있는 유학 생활이니 정이 들어서 헤어질 때 마음 아프고 싶지 않아서, 거리를 두는 척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헤어져야 하는 걸 알고 있었다면, 거리를 둘게 아니라 더 빨리 가까워졌어야 했다. 마음을 감추고 닫을게 아니라, 활짝 열어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다. 지금처럼 바로 옆에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모른 척하지 말았어야 했다.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 유학생들 전원이 같이 밥을 먹었다. 다음 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그녀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이제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 볼 수 있는데!”
라고 온 힘을 다해 나에게 외쳤다. 그리고는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방금 막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사람처럼.
내가 한참을 달래어도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헤어짐의 아픔을, 꺾어버린 마음의 작은 들꽃을 모두 그녀에게 들려 보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절반은 내 몫으로 가져와야만 했음에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그녀가 떠오른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꼭 전하고 싶다. 너 덕분에 지레 겁을 먹고 마음의 장벽만을 세우다 보면 후회만 가득하다고, 아프더라도 마주 보고 함께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헤어짐은 아프다. 그렇지만 후회는 지워지지 않고 오래 남아있다.
그러니 누군가와 만났음에도 헤어짐이 두려워, 숨고 싶다면 잠시 멈춰 생각해 보자.
그 숨어버린 시간이 평생 후회로 남지 않을지.
지금 당신 곁에도, 당신이 아직 꺾지 않은 작은 들꽃이 남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