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에게 닿기까지
"사랑해라는 말은 할 수 없어"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의 일이다. 학교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의 캐셔로 근무했었는데, 마침 손님이 없어서 같이 일하던 순박한 얼굴의 대학교 1학년 일본인 남학생과 잡담을 나눴었다.
“한국은 어때?”라는 말로 시작해서,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가까운 듯 먼 나라인 서로의 모국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잡담이 마무리되는 것 같은 와중에, 순박한 얼굴의 그가 갑자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한국어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어? 한국 남자들은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 줘?”
연애 상담을 들어줬으면 해서 하는 질문인가? 싶었으나, 그런 건 아닌 듯하여 되물었다.
“너는 사랑해라고 자주 말 못 하니?”
그랬더니 눈매와 입가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힘이 들어가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일본어로 사랑해라고는 말 못 하지.”
라고 대답하던 남학생의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지 않냐는 얼굴로 말하는 그의 생각이 궁금해져 극단적인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사랑해라고 말해 주지 않아서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어떻게 할래? 그래도 말 안 할 거야?”
그럼에도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사랑 해라는 말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 남자들은 그럴 것이라며 친절히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제 갓 스무 살 남짓 되었으면서, 마치 자신이 일본 남자를 대표하는 것처럼 단언하길래 오기가 생겨서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말이야. ‘아이시떼루’(사랑해)가 어렵다면 ‘아이 러브 유’라고,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는 말할 수 있어?”
그랬더니 단번에 “응.”이라고 답하는 그였다.
“이상하게도 외국어로는 말할 수 있어. 그렇지만 모국어로는 할 수 없어.
‘아이시떼루’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말이라서, 정말로 중요한 순간에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너는 한국어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
재미 삼아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화살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의 물음에 나 또한 대답할 수 없어서,
“한국 남자는 일본 남자보다는 말하는 편일걸?”이라고 얼버무리곤 도망치고 끝났던 것 같다.
그의 물음은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서 답을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나 또한 그와 같이 ‘아이시떼루’, ‘워 아이 니’, ‘아이 러브 유’라고는 말할 수 있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는 사랑한다는 말을 고맙다는 인사말처럼 가볍게 쓸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어로, 나의 모국어로는 쉽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다.
그에게 왜 말하지 못하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어놓고 말이다.
마음으로 아는 언어는 다르지만
그 말의 의미도, 무게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쉽사리 꺼낼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의 극단적인 질문에, 그가 다른 답도 했었는데
‘아이시떼루’라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좋아해’라고는 할 수 있다고,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필사적으로 말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유명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처럼,
“달이 참 예쁘네요.”라고는 할 수 있다며,
수줍은 얼굴로 “나쓰메 소세키도 일본 남자야. 일본 남자들도 한국 남자들 못지않게 로맨틱해” 라며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의 변명에 피식 웃고 말았지만, 나 또한 다르게는 말할 수 있다.
“우리, 같이 별 보러 갈래?”라고 말이다.
그에게 ‘아이시떼루’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말이라면,
나에게 ‘사랑해’는 밤하늘의 별빛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반짝이는 별들이 보이지만,
그 별의 반짝임이 사람의 눈에 도달하기까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천 년이 걸리기도 한다.
머나먼 우주에서 시작해 지구의 대기층을 거쳐 먼지와 부딪히고 공기 중의 무수한 분자들에 치이고 나면,
그제야 우리의 눈에 별빛이 내려앉는다.
사랑도 별빛처럼, 나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에서 출발해 여러 충돌을 겪고,
각기 다른 시간에 도착하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하루 만에 닿았던 사랑이라는 마음이,
나에게는 몇 년이 걸리는 별빛처럼 항상 늦게 도착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오래 걸리는 말이 “사랑해”였다.
그는 ‘무겁다’고, 나는 ‘오래 걸린다’고 표현했지만,
모국어로는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같은 단어, 같은 의미의 말을 하고 있음에도
왜 외국어로는 할 수 있고 모국어로는 할 수 없는 것일까?
모국어는 너무 가까워서, 인간관계로 치면 피가 섞인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 한없이 가까워서 오히려 내뱉기 어려울 수 있다.
가족이라서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하기 어려운 말이 있듯이
모국어가 딱 그렇다.
눈만 봐도 알 수 있는 관계가 있듯,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아는 말이라서
그래서 더욱 꺼내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이 특히 가장 소중한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다.
‘사랑해’라고 몇 백 번을 말할 수 있어도 ‘아이시떼루’ 한 번을 말할 수 없는 그도,
‘아이 러브 유’라고 수천 번 말해도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를 말하기까지 가장 오래 걸리는 나도,
영화를 보다가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때의 순간이, 그와 경쟁하듯 답했던 그 질문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는 이제 그 말을 꺼냈을까?
그에게 가장 무거운 말인 ‘아이시떼루’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게 만드는 사람이 생겼을까?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그이지만
언젠가 그때처럼 나에게 묻는다면,
이제는 도망치듯 얼버무리지 않고 그의 물음에 조금은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말이야
아직 별을 보러 가는 중인가 봐.
별빛이 말없이 고요하게 다가오고 있어서
영원히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헤매기도 하지만,
그럴 땐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먼저 도착한 별들이 답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해.
“너의 별빛은 오고 있는 중이야.”
라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