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너

커피에게

by Tempy

한 순간 스치듯 지나간 향기에도 나는 너를 떠올려.
분명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아직도 나의 곁에는 네가 있더라.

라는 글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건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며 쓴 문장이 아니다. 그저 커피를 떠올리며 써 내려갔다. 왜 커피를 이렇게까지 애절하게 표현했는지 묻는다면 필자인 내가 극심한 커피 금단 현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와 나는 3년 넘게 뜨거운 연애를 했다. 주 5일 하루 2잔, 주말에는 하루 1잔씩 꼬박꼬박 마시며 데이트를 했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로가 좋아서 죽을 거 같은 커플 마냥 사랑을 했다. 출근하며 한잔, 오후에 한잔이 당연했다. 피곤하면 충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커피부터 찾았다.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굴러가는 직장인 생활에서 절대 헤어질 수 없다고, 그럴 필요도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이 허황되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의 몸이 커피에게 보이콧 선언을 했다. 밤늦게 마셔도 숙면을 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 올여름 컨디션 난조로 조퇴를 하고, 병원에서 수액까지 맞으며 체력이 바닥을 쳤던 날에도 나는 커피를 마셨었다. 나중에 약사님께서 처방받은 약에 대해 설명하시며, 지금은 카페인을 멀리하고 수분 보충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음에도 나는 별일 아닌 듯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평소 아프지 않고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던 나의 몸은 한 달 넘게 회복되지 못했다. 식사량이 급격하게 줄고, 한번 잠들면 기상 시간까지 깨는 법이 없었는데 새벽마다 깨었다. 마치 제멋대로 불타오른 지난 3년간의 사랑이 업보가 되어 돌아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런 나에게 아는 선생님이 커피와 헤어져 보는 건 어떠냐고 말씀하셨다. 본인도 그랬다고 하시며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잠들 수 있었다면서.

체력적 한계를 느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갑작스럽게 이별 선언을 했다. 처음에는 담담히 받아들이며 나는 우리가 조용히 헤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후폭풍은 금단현상이라는 이름으로 돌연 찾아와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하는 게 어디 있냐며 밤늦게 “자니?”로 시작되는 문자와 전화.
집 앞으로 찾아오는 전 연인과 끝이 없는 실랑이까지 하고서야 정말로 끝이 나듯이 카페인 또한 그랬다. 갑자기 사라진 카페인에 나의 몸은 놀랐고 뇌는 사고를 정지시켰다. 그럼에도 카페인이 돌아오지 않자 극심한 두통이 이어졌다. 진통제 한 각을 다 먹고도 사라지지 않아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이미 깨져버린 머리에 주삿바늘을 끝없이 찌르는 듯한 두통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5일을 버텼다.

아무리 그리워도, 보고 싶어도 내가 끊어 냈으니 다시 만나고 할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연인과 헤어지듯 너무 아파도 극심한 두통에 당장이라도 달려가 우리 다시 잘해보자며 울면서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랬더니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통증은 감소했고 전보다는 약간 수월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2주가 지난 후에는 몸도 가벼워졌다. 이젠 살만하다 싶었다.

그렇다고 커피가 떠오르지 않냐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별 후,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매 순간 떠오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퇴근길에도 보고 싶다. 가장 최악은 회사에서 동료들이 들고 오는 커피가 너무나도 향긋해서 헤어진 연인의 소식을 전해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한다.

아마 나는 잊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리워 미칠 거 같을 때는 너랑 닮았지만 너는 아닌 디카페인을 만나보기도 하고, 스트레이트 홍차에 기대 보는 요즘이다. 내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단칼에 밀어낸 너지만 오늘도 네가 보고 싶다. 커피를 지독히도 사랑하면서도 전력을 다해 도망치며 아직 헤어지는 중이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커피를 사랑할 거다.

다만 그 사랑은 예전처럼 뜨겁게 불타오는 것이 아닌, 달이 지구 주변에서 계속 공전하면서도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주변에서 맴도는 사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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