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스토리에게

가고시마 러브스토리

by Tempy

“결혼한대, 어쩌지!?”
라고 시작하는 문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대체 누가 결혼하길래 이리도 호들갑인가 싶어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렸다.

기묘한 인연의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 절친이 호주에 워홀을 떠났을 때 제일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 M의 결혼 소식이었다.
몇 번 한국에 여행 차 와서 내가 가이드를 해주기도 하고,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엉망진창으로 섞어 쓰며 셋이서 연애 이야기, 이상형 등을 밤새 조잘거리며 생각보다 마음의 거리가 좁혀졌던 일본인 친구였다.

나와 절친이 놀란 건 M의 결혼 소식보다는 우리가 그녀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결혼식 문화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친하고 앞으로도 인연을 이어 가겠다는 사람만 초대한다고 들었었다.

그렇기에 초대받은 우리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우리는 자국에 있는 절친들과 비슷한 마음의 거리에 있다는 것을 현실로 증명해 준 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마음에, 그녀의 부름에, 우리도 참석이라는 형태로 답하기로 했다.
인연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타국의 결혼식에까지 발걸음을 하게 만드는지,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나 싶었다.

2024년 12월 14일, 나와 절친은 가고시마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고시마는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에 가까운 느낌이라 한겨울에도 영상 12도 정도로 매우 따뜻했다.

‘이렇게 포근한 기온에서 자란 M이라서 그렇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된 것일까’라는 생각에, 조금 많이 부러워졌다.

외국인이라 어느 정도 이해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동방의 예의지국에서 온 한국인이 결례를 범할 수 없다는 생각과,
예식장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도쿄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그 나라의 예식 문화에 맞추고자 사전 준비를 아주 철저하게 했다.

어쩜 그리도 준비할 게 많은지.
하객임에도 올림머리 헤어 세팅, 샤랄라 한 옷, 세상 처음 받아보는 네일, 진주 액세서리, 축의금도 구김 없는 빳빳한 신권에 반드시 홀수일 것 등등 끝이 없었다.

축의금 봉투가 금액마다 다르고 종류가 300가지가 넘는다는 걸 현지에 도착해서 알고는 아연실색했다.

두 번은 참석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치 전투에 참가하는 전사처럼 위장 크림을 발라본 적도 없으면서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르듯 결연한 표정으로 화장을 하고,
총을 챙기듯 힐을 신고
“가자, 전장으로!”가 아닌 식장으로 향했다.

신부도 아닌데 정말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지,
너무 화려한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식장에 도착해서 알았다.

절친과 내가 가장 수수했고,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우리는 너무나도 한국인이자 외국인이었다.

총 100명의 하객 중 외국인은 단 3명, 그중 둘이 우리였다.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둥둥 떠서 인사만 하다 가겠구나 싶었는데,
직원의 안내에 따라 본식을 위한 메인 성당으로 이동하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한국에서는 결혼하는 당사자들에게만 축하 인사를 하기에 당연히 내가 들을 인사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 결혼식장에서는 모두의 경사로 여겨 하객들에게도 같은 인사말을 건넨다고 한다.
나는 축하를 하러 왔는데 축하를 받았다는 사실에 약간의 문화 충격을 받았다.

결혼 축하를 받으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고,
모두가 하나의 경사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실감 났다.

그 인사말 덕분이었는지 더 이상 나와 절친은 둥둥 떠 있는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었다.

본식이 진행되고, 신부 입장과 동시에 거의 하객 전원이 눈물을 쏟아냈다.
신랑과 신부를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친지들과 친구들이라 그런지,
축하하는 마음이 앞서 눈물부터 흘러나오는 모습에 내 마음까지 뭉클해졌다.

본식이 끝나고 웨딩 세리머니, 피로연이 저녁까지 이어졌는데,
7시간 넘게 이어진 결혼식에서 가장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 영정사진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식장에 오신 신부 할머님이
신부의 돌아가신 할아버지로 보이는 영정사진을 가슴에 꼭 안고 계셨다.

마치
“영감, 우리 손녀딸이 결혼한대요. 잘 보이나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언젠가 우리 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손녀 이렇게 큰 거, 할아버지가 봤으면 참 좋아했을 건데…”

신랑 신부의 사랑 말고도, 그곳엔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사히 결혼식 참석 미션을 끝내고, 나와 절친은 안도감에 가고시마의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활화산인 사쿠라지마에도 가고, 수족관에도 가고, 모래찜질로 유명한 이부스키에도 가봤다.

가고시마는 시내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외곽으로 나가려면 교통편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택시를 이용해야만 했다.

택시를 이용하면 몸은 편했지만 나는 머리가 편하지 못했다.

도쿄와 달리 상당히 시골인 가고시마는,
특히 시내 밖에서 외국인이 자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신기했던 택시 기사님들은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셨다.

가고시마의 탄생에서부터 재난 이야기, 무수한 정치 문제, 소비세가 얼마나 올랐는지, 한국은 어떤지,
재무부 장관의 직속 부하가 자기 친구이며 사돈의 팔촌이 땅을 샀고 재일교포라는 이야기까지 들어 드리며
예의 있게 적당한 맞장구를 치다 보니,

택시를 탈 때마다 나는 되레 지쳐 갔다.

다음번 택시를 탈 때는 “우리 한국어를 많이 하자. 기사님이 이야기하실 틈이 없게 말이야.”라고 친구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아마 그즈음이었다. 사랑꾼 꽃중년 기사님과 만난 게 말이다.

가고시마에 유명한 위스키 증류소가 있다고 해서 위스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하지만, 지인들 선물용으로 구매할 목적으로 방문 견학을 갔었다. 사진으로는 절대 담지 못한다는 어마어마한 시음실 뷰도 구경하고, 절친이랑 바다 배경으로 청춘샷도 찍으며 역으로 돌아갈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찍는다고 입고 있던 코트도 잠시 벗어 두고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졌던 탓에 12월이라는 사실을 망각했었다. 갑자기 몰아쳐 오는 추위에 곧바로 코트로 완전 무장하고, 택시에 바로 올라타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택시 기사님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신 건지, 과하신 건지, 우리가 바로 타도 모자랄 판에 본인이 차에서 내리시는 것이 아닌가. 증류소를 배경으로 절친과 나의 투샷과 개인 샷까지 찍어 주신다며 핸드폰을 거의 빼앗다시피 들고 가시더니, 저 정도면 바닥에 냅다 누워버린 것과 뭐가 다르지 싶을 정도의 포즈로 인증숏을 찍어 주셨다.

요청도 하지 않은 우리는 놀라움에 잠시 고장이 났지만, 세상 열심히 찍어 주곤 쿨하게 운전석으로 향하시는 기사님의 뒤를 따라 조용히 차에 탔다.

증류소에서 역까지 25분. 제발 이번에는 말없이 가자 싶어서 시선을 창문 밖으로 고정하려고 돌리려는 찰나에 택시 기사님이 물어보셨다.
“한국인이죠?”

망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주제가 튀어나와서 또 어떤 표정으로 리액션을 해드려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이 스치기 시작했다.

“네. 맞아요. 한국에서 왔어요.”

나의 말에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 택시 기사님 표정에서 뭔가 다른 것이 보였다. 잠시 눈동자가 어린아이의 눈처럼 순진하게 반짝거리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하셨다.
“고마워요. 난 참 한국에 고마워요.”

한국 기업의 주식이라도 사셔서 대박이 나셨나. 아니면 빼돌려진 한국 유물을 손에 넣으셔서 암시장에 파시곤 돈을 번 파렴치한이 되신 것일까 싶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나의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한국 덕분에 아내와 이혼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뭐라고요? 내 귀를 의심했다. 증류소에서 시음을 많이 안 했던 것 같은데 위스키 향기에 취해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이해를 잘못한 것일까 싶어서 기사님께 다시 여쭈었다.
“한국 덕분에 아내와 이혼하지 않았다는 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말 그대로예요. 진짜 덕분에 이혼하지 않았습니다.”

이 스토리 꼭 전부 들어야겠다는 직감이 들어서 기사님께 좀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그게 말이에요. 전 규슈 남자(*경상도 남자와 같은 의미)거든요. 무뚝뚝하고 바깥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내가 혼자 속앓이 하는 것도 몰랐어요.”

기사님의 모든 말씀이 흥미로워서 옆에 같이 타고 있는 절친에게 통역조차 하지 않은 채 눈빛으로 “이따 얘기해 줄게!”라는 신호를 보내곤 기사님의 말에 집중했다.

“그래서요?”

“우리는 연애 결혼했어요. 아내가 20살, 내가 22살에 말이죠. 처음 사귈 때부터 생일이 되면 아내가 좋아하는 꽃을 나이만큼 선물하곤 했죠.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하나 둘 생기면서 우리 둘 다 여유가 없어서 앞에 있는 걸 해치우기 바빠서 꽃이고 뭐고 없이 살아내기 바빴습니다.”

기사님의 말이 너무나 이해되었기에 나는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살아내기 급급한 나머지 앞에 있는 아내조차 나는 보이지 않았나 봐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죠. 아내는 항상 오늘은 어땠는지 묻고 아이들이 어땠는지 말해 주곤 했는데 나는 귀담아듣지 못했죠. 그렇게 마음을 조금씩 닫혔던 것 같아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닫힌 문은 이혼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했죠. 아이들도 이제 대학생이니 갈라서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이렇게까지 진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실 줄 몰랐기에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고, 갑자기 한층 진지해진 나의 표정에 절친도 동요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혼 이야기가 오갈 즈음에 코로나가 터졌죠. 당분간 일을 할 수도 없었고 나라에서 외출을 금한 터라 갑자기 둘이서 집에 갇히게 되었는데 아내가 말하더군요. 할 거 없으면 자기랑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겠냐고 말이에요. 갑자기 뜬금없이 한국 드라마인가 싶었지만 할 것도 없으니 옆에서 조용히 보았습니다.”

한국 드라마라는 말을 알아들은 절친도, 갑작스러운 넷플릭스의 등장에 놀란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기사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더 들어보기로 했다.

“보다 보니 재미도 있었지만 한국 남편들에게는 정이 있더군요. 이거 우리 와이프 좋아하는 건데, 우리 와이프 오기 전에 정리해 둬야지… 하나같이 와이프 바라기 더군요. 한 편, 두 편 같이 보면서 그런 한국 드라마 속 남편들을 보는 아내의 눈에 부러움과 외로움 그리고 슬픔이 있다는 걸 난 그때 알았습니다.”

세상에. 기사님이 지금 한 편의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저도 조금은 따라 해보려 했어요. 드라마 속 한국 남편들을 말이죠. 흉내밖에 못 하더라도 아내가 웃으면 되었지 싶어서 전혀 하지 않았던 집안일부터 하나씩 해봤습니다. 빨래 개기, 분리수거하기 같은 걸 하나씩 하는데 대견하게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이 너무 좋아서 하나씩 더 하게 되었어요. 요리 같은 건 전혀 자신이 없었는데 오므라이스 같이 쉬운 것부터 만들기 시작했죠.

처음 만들었을 때 밥도 타버리고 맛도 이상했는데 한 그릇 싹싹 비운 아내가 갑자기 피식피식 웃는 거예요. 맛있다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때부터 나는 바뀌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남편처럼 돼서 아내가 더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기사님이 나를 타국에서 펑펑 울리려고 작정한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내 눈물샘을 자극했고, 요동치는 나의 표정에 절친은 ‘이따가 꼭 무슨 내용인지 물어봐야지’ 하는 얼굴을 했다.

“한국 드라마 남편 흉내를 제법 잘 따라 하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이었는데 아내가 새벽마다 깨서 잠을 못 잔다거나 팔다리가 퉁퉁 붓곤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안쓰러운 마음에 마사지도 해주고 새벽에 깨서 힘들어하면 다시 잠들 때까지 등을 쓰다듬어 주곤 했습니다. 같이 병원도 가 보고요. 그랬더니 생전 들어본 적이 없던 의사 선생님 칭찬까지 듣게 됐습니다. 고작 등을 쓰다듬어 주고 토닥여 준 것뿐인데 그게 과학적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사님, 그건 고작 토닥여 준 게 아니랍니다.
아내분이 새벽마다 깬다는 걸 힘들어한다는 걸 알아주셨잖아요.
울고 있는 사람에게 잠시 기대라고 어깨를 내어준 것과 같답니다.
마치 비가 오는 사막의 풍경을 목격한 것 마냥,
부부 사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하고 싶은 걸 누르고 기사님의 이야기에 더 집중했다.

“아내가 갱년기 진단을 받고 한동안 정말 많이 힘들어했어요. 저는 바깥일만 하느라 어느새 아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다 잊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일을 돕고 같이 요리를 하고 같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아내 곁을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그거면 되더라고요.

우리 아내가 나를 보고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마냥 다시 웃어 주기 시작했어요. 아내의 미소를 보니 한국 드라마에서 부부가 저녁에 사소하게 대화하고 잠시나마 하루를 공유하던 장면이 떠올랐어요.”
아내는 그게 필요했던 거였어요. 고지식한 규슈 남자라서 그걸 깨닫는 데 20년이 넘게 걸렸네요.”
기사님의 담담한 고백에 왜 내가 다 목이 메는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나름 표정 관리를 했으나 소용없었다.

“그 공백을 단숨에 메워 버릴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채워 나갔어요. 그게 벌써 3년 전이니까 말이에요. 많이 태운 오므라이스를 만들던 제가 이제는 아쿠아팟챠(*이탈리아 생선 요리)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아쿠아팟챠요!? 저도 만들어 보려고만 하고 아직 도전 못 한 요리인데 정말 대단하세요!!!”

진심을 다해 칭찬하는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엉엉 울어 버릴 것 같아서 폭풍 칭찬을 해 드렸다.
그랬더니 나의 마음에 결정타를 날리듯 기사님이 다시 말했다.

“대학생인 아이들도 아빠 많이 바뀌었다며, 손님처럼 놀라면서 나를 칭찬해 줬어요.
남자란 참 단순해서 칭찬을 받으니 더 잘하고 싶은 거 알아요? 신이 나서 저는 이것저것 더 궁리하다가, 참 오랜만에 아내에게 꽃을 선물했어요.
그저 쑥스럽다는 듯이 웃고 말겠지 했는데, 아내가 펑펑 우는 거예요. 꽃이 너무 예쁘다고 말이에요.”

그건 아마 꽃이 아니라, 꽃을 준 당신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난 걸 거예요.
꽃을 고르는 듯 내 마음을 들여다봐 준 것 같아서 감동한 걸 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참 별거 없는데 오래 걸렸네요. 지금은 아내의 눈에 근사하게 보이고 싶어서 자주 수염도 밀고, 한국 남자들처럼 나름 피부 관리도 합니다.
마스크팩을 붙일 때마다 딸내미가 폭소하지만, 나름 잘 관리된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이만하면 그… 뭐냐... 꽃중년 정도는 되어 보일까요?!”

라는 물음에 절친과 나는 이 세상 칭찬이란 칭찬은 다 해 드렸다.
가고시마에서 가장 높은 텐션으로 너무 신나서 이야기를 하는 나의 모습에, 대충은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고 추후 친구가 말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기사님이 만든 아쿠아팟챠 사진과 그의 소중한 아내, 자녀분들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사진을 보는 그의 시선에서는 사랑이 묻어 나왔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지금은 애들이 대학생이라 해외에 가기 어렵지만, 결혼 30주년에는 아내와 같이 한국에 여행 가려고요.
나에게는 따스함이 무엇인지 알려준 나라라서 참 고마워요.
주절주절 이야기가 길어져서 미안해요. 일본어로 이야기되는 한국인을 만난 게 처음이라 반가움에 그만 주책이었네요.”

꽃중년이시니 괜찮다고, 오히려 제가 더 고맙다고.
30주년 때 꼭 오셔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다해 작별 인사를 했다.
번호라도, 라인 아이디라도 받아 둘 걸 그랬다.
30주년 때 오시면 밥이라도 사드리고 싶다고 말이다.

꽃중년 기사님의 이야기에서 나는 또 사랑을 배웠다.

가장 가까이에 있어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이젠 놓아 버려야 하나, 너무 늦은 것일까 싶을 때
한 번 더 잡아보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가려져 있던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그때 그 사람이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도 있다.

가고시마에서 사랑을 배웠다.

나도 다음 사랑에는 기사님처럼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빙빙 돌아서 많이 헤맬지는 모르지만,
어긋나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주 보려 노력하겠다고.

그런 사랑이 되어 주겠다고 조용히 맹세했다.

다 타버린 오므라이스를 먹으면서도 웃으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어 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배운 사랑은 나에게 그런 의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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