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거대한 화학공장이다. 체내 분비되는 수많은 물질, 호르몬과 같은 것들의 화학반응을 통해 일상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이 완벽한 조화가 깨지면,질병이 생기게된다.
'뇌'
와 관련된 책 혹은 과학서적을 좋아하는 나. 뇌와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궁극에는 과학과 종교의 영역이 만날 수밖에 없다.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은 뉴런과 시냅스라는 신경세포의 자극과 반응의 결과일 뿐, 무엇도 정신이라 불릴 만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단순한 화학반응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적 세계를 가지고 있다. 기억이란 체계, 의식, 혹은 무의식. 단순히 시냅스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과 그 전기적 작용으로 나타나는 감각과 현상이, 인간의 의식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분리된 의식이 있고, 뇌의 생물학적 현상은 그냥현상뿐이라고 생각했다. 둘을 별개로 생각했다.전문가들은 자꾸만 합치고 설명하고자 하지만, 아직도 설명하지 못하는 정신현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최근 호르몬 장애로 병이 생겼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처럼, 내가 아는 쓸 때 없는 지식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첫째. 의식도 화학반응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
올바른 의식과 합리적 이성, 과학적 사고를 통해 내 몸은 내가 컨트롤 가능하다 생각해왔다.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다고, 일체유심조를 되뇌며 살았다. 아니더라. 호르몬 균형이 깨지면, 아무리 일체유심조를 되뇌어도 우울해진다. 감정이 통제되지 않은 순간이 오더라. 즉, 적당한 약물을 통해 호르몬 균형을 찾아, 의식이 맑아지도록 해야 한다. 결국 둘은 한 몸이다.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더라. 그래서 이런 말이 있나 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둘째.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도 늙는다는 것.
눈이 잘 안 보인다. 허리가 아프다. 소화가 안된다는 현상이 드러나 보이는 노화만 신경 쓰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은 몸속 장기들도 늙는다. 단지, 티 내지 않고 있기에 모를 뿐. 서서히 기능이 저하되는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 그들의 노화를 받아들이게 될 뿐이다.
이들이 구체적인 증상을 발현시키니 알게 되었다. 기억력 감퇴만이 뇌의 노화가 아니구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이 발생되는 순간, 여러 장기에 영향을 주게 되는구나. 우리가 완벽한 호르몬 균형 속에 살고 있었구나를 말이다. 아니, 완벽한 화학적 균형 속에서 살고 있다.
앞으로 나의 치료방향은 호르몬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장기도 기능을 다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노화된 것뿐인데, 너무 호들갑이 아닌지 고민도 된다. 100세 시대가 아니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수 있는데. 우린 너무 많이 알고 있다. 매년 건강검진을 통해 몸 안을 들여다본다. 결과지에 쓰인 이상 결과를 스스로 분석해본다. 증상 원인이나 치료 방법이 인터넷에 널려있다.아직 경험하지도 않은 질병의 치료과정이 주마등처럼 상상되면서 지나간다.
전문지식이 대중화돼버린 시대, 의료기술이 사람의 마음보다 앞선 시대, 자신의 죽음조차 선택할 수 없는 시대에 산다. 축복인 걸까?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지금의 수명연장이 젊음이 아닌 노년만 20년을 연장시켜 놓았다고 투덜대 한참 웃었다.
오래 사는 만큼 병도 오래 앓는다. 건강한 상태에서의 생존기간은 그렇게까지 늘지 않았다. 의학은 장애와 치매를 만들어내는 기계가 되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삶을 20년이나 더 살라니! -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파스칼 브뤼크네르)
진즉부터 남편에게 연명치료는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삶이 삶으로써 의미 있을 때 삶이 아닐까, 늘 생각한다. 사후에도 화장해서, 조그만 단지에 아이들이 섭섭하지 않을 만큼의 기간만 담아두었으면 좋겠다. 삶이 끝난 후 절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산자들의 몫일뿐이다.
지난한 노화와의 전선 앞에 서, 출정의 결의를 다져본다.
글을 보니 뭔가 심각하고, 비장해 보인다. 결코 그런 게 아니다. 쓸 때 없이 아는 것들에, 불필요한 생각이 흘러나온 참사일 뿐, 별 일 아니다.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