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소소한 단상
# 출연진: 달걀, 구름, 가이아
#1
아침으로 먹는 삶은 달걀. 냉장고에 두었다가 먹을 때 꺼낸다. 주말 아침, 두 아이를 위해 달걀을 까주려고 달걀 접시를 식탁에 내어 놓았다.
녀석들 표면에 물기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물방울이 되어 송골송골 맺혔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한마디 했다.
"뭐야~~ 벌써 땀 흘리는 거야? 그렇게 더워?"
달걀 보고 이야기하는 내게, 딸아이가 한 마디.
"엄마~ 좀 과하신 거 아녜요?"
#2
현장에 나가려는데, 비가 올 것만 같다. 차를 타고 가는데 한 방울씩 떨어진다. 이 정도면 괜찮다 싶었는데, 어느덧 후드득후드득 굵은 방울이 쏟아진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맑고 푸른 높은 하늘 아래, 그 색깔마저도 어두운 먹구름 띠가 지나간다.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후드득후드득 덜어내면서. 부끄러운 듯 빠른 속도로. 마치 자신의 슬픔을 감추려는 것처럼.
소나기도 아니고 보슬비도 아닌, 그저 몇 방울만 쏟아내고 흘러가는 먹구름이. 언젠가 지난 나의 모습과 같아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 힘들 땐 그렇게 조금 덜어내도 돼. 괜찮아. 지금 넌 어디로 가는 거니?"
#3
행정기관 추가 이전 관련 설계를 추진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나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미개발지.
8년 전 사람들이 살고 있을 때, 한번 왔던 기억이 남아 있는 그곳. 집은 모두 철거되고, 좁은 길과 구거만 남아있다.
폐허가 되었을 그곳은 자연의 새로운 둥지가 되어있었다. 도심지에서는 보기 힘든 나비 떼가 날아다닌다. 잠자리도 사람의 발길을 피해 부지런히 도망간다. 그곳을 가득 메운 이름 모를 잡초들 덕분에 더 나아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현장에 있다 보면, 이런 경우에 불청객(뱀)을 만날 확률이 높기에 현황만 확인하고 뒤돌아섰다. 눈앞에는 도로 위를 생생 달리는 차들이 보인다.
그저 새로 난 도로 옆 샛길을 따라 들어와 봤을 뿐인데 시간이동을 한 기분이다. 시간이 멈춰버린 그 공간에서 현재로 다시 되돌아간다. 풀 내음이 그득한 공간에서 매연냄새 그득한 삶 속으로.
인간의 손길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잠시 놓아두었을 뿐인데 자연은 잘도 품어내었더라.
귀하고 귀한 노랑나비 떼를 본 그날, 새로운 감정이 솟아올라 글로 남기고 싶었다. 모두가 각자의 삶 속에서 익혀낸 설익은 마음들을 꺼내놓지만, 자연은 그 모든 것들을 품어내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마치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존재를 느낀 듯했다.
고작 만년도 존재하지 못한 인류가 46억 년을 살아온 지구를 위협한다. 아니다. 자기 스스로를 위협하는 거다. 지구는 그 인류를 소거하고 다시 품어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낼 테니. 지구를 걱정할게 아니라 어리석은 스스로를 걱정해야 할 때다.
그날, 묵직한 여신의 숨결과 너른 품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