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xit May 01. 2022

선택의 부재로서의 사랑에 대하여

「지와 사랑」, 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에게는 사랑마저도 정신이다. 이 우정 또한 그가 이끌어가는 정신이며, 그의 사랑은 심상 속 헌신의 사랑이다.



예술가와 사색가에게 문자는 다르다. 예술가는 문자를 변형시키고, 휘발시키지만, 사색가는 그 기호에 신뢰심을 갖길 바란다. 영혼과 정신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사랑'에 대한 접근과 '문자'에 대한 접근이다. 이들은 감히 시선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르치스가 남겨지는 과정의 처연함은 그가 따르고 있는 것이 외부에 있는가 내부에 있는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가 희생시킨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의 마음이 메마르지 않고, 언제나 꽃 피울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샘이 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반면 골드문트의 발치에는 방랑, 수많은 사랑, 죄악, 격류, 도취, 정렬, 고통, 그리고 상처 위를 파고드는 햇빛이 있다. 그가 쌓아 올린 이 값진 것들을 규율과 질서를 위해 바치는 데 주저함은 없다. 그리고 또다시 진공의 상태에서, 그는 어머니를 만나며 환희의 순간에조차, 어머니 없이 죽음을 맞이할 나르치스를 두고 떠나는 것을 염려한다.



... 나르치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의 사랑은 최상의 것을 위한 극한의 사랑이며, 선택의 부재로서의 사랑이라는 점이다. 시선 속에는 머물 수 없는 사랑.






우리에게 얼마만큼, 또 어떠한 헌신이 필요한가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우리는 핏방울 넘쳐나는 값비싼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혼란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예술가이자, 사색가이기 때문이다. 평생의 헌신, 모든 것을 기어 올린 헌신 이후에도 우리는 또다시 동요되거나 의심받기 때문이다.




고귀한 위치에 서도록 정해진 인간은 정열적이고 도취된 생활의 혼란 속에 깊숙이 잠겨 먼지나 피투성이가 되는 일은 있을지라도 비겁해지거나 내심의 신성한 것을 죽이지는 않으며, 깊숙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거룩한 그의 영혼 속에서는 신성한 빛과 창조력이 꺼지는 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texIt #텍시트 #슬림손택

작가의 이전글 행복이라는 불행을 짊어진 숭고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