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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Aug 08. 2017

1루수가 누구야?

말장난 분석하기

1루수가 누구야?

애벗과 코스텔로Abbott and Costello의 〈Who's on First?〉를 각색한 〈1루수가 누구야?〉

어떻게 이런 말장난이 가능한 걸까? 왜 선수는 코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일단 1루수의 이름이 '누구'다. 누씨 집안의 외자 이름을 가진 사람.


선수: 그럼 1루수가 누구야?

코치: 어.

(…)

선수: 1루수한테 월급 주지? 돈 받는 애가 누구야?

코치: 어, 전부 현금으로 주지.


이런 말장난이 가능한 것은 "누구"라는 표현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 이것은 어떤 사람의 정체를 묻는 의문사인가? 아니면 사람의 이름인가?


사용과 언급

이런 일이 학문적 논쟁에서 벌어지면 곤란하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사용use과 언급mention을 구분한다.


선수는 '누구'라는 말을 사용했고, 코치는 '누구'라는 말을 언급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말?


(1) 시계는 태엽과 시침 분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시계'는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X'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X라는 대상을 언급한다.

가령 (1)은 '시계'라는 말을 사용해 시계라는 물건을 언급하는 문장이다. 우리가 현재 시각을 알고 싶을 때 쳐다보는 바로 그 물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

반면 (2)는 물건이 아닌 단어 '시계'에 대한 문장이다. 물건이 아닌 단어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시계''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선수는 '누구'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특정 의문사를 언급한다. 그러니까 선수는 1루수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코치는 ''누구''라는 말을 사용해 '누구'라는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누구"라는 음성을 발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말이 통할 수가 없다.

선수는 짜증이 난다. 1루수가 누구냐고 질문에 상대방이 "어"라는 대답이나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치는 답답하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줬는데도 상대방이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하니까.


코치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바라본다.

선수: 그럼 1루수가 '누구'야?

코치: 어.

(…)

선수: 1루수한테 월급 주지? 돈 받는 애가 '누구'야?

코치: 어, 전부 현금으로 주지.


당근이지

선수: 공 잡는 거 누구야?

코치: 당근이지.

선수: 야, 내가 1루로 공 던지면 누군가는 공 잡아야 되지? 자, 그게 누구야?

코치: 당근이지.

이 순간부터 이들의 대화는 산으로 간다.


코치는 선수의 말에 동의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당근"이라고 발음한다. 그가 언급하는 것은 '당근'이라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믿음이나 견해에 동의한다는 의사다. '당근'이라는 말은 이 언급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선수는 "당근"이 당씨 집안 출신 선수의 이름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당근''이란 말을 사용해 '당근'이란 말을 언급한다. 코치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혹시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못 알아들을까 봐 이렇게 친절한 설명도 들어간다


이들은 각각 위 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선수 입장에서 본 대화

선수: 공 잡는 거 누구야?

코치: '당근'이지

선수: 야, 내가 1루로 공 던지면 누군가는 공 잡아야 되지? 자, 그게 누구야?

코치: '당근'이지

선수: 누구?

코치: '당근'

선수: '당근'?

코치: '당근'

선수: 좋아. 내가 공을 잡고 '당근'한테 던진다

코치: 아니지, 넌 누구한테 던져야지

선수: '당근'

코치: 아니지, 넌 누구한테 던져야지

선수: '당근'이지

코치: 그렇지

선수: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코치: 아니지, 네가 한 번 물어봐

선수: 내가 공을 누구한테 던진다고?

코치: '당근'이지

선수: 자, 형이 물어봐

코치: 네가 공을 누구한테 던져?

선수: '당근'이지

코치: 그렇지


코치 입장에서 본 대화

선수: 공 잡는 거 '누구'야?

코치: 당근이지

선수: 야, 내가 1루로 공 던지면 누군가는 공 잡아야 되지? 자, 그게 '누구'야?

코치: 당근이지

선수: '누구'?

코치: 당근

선수: 당근?

코치: 당근

선수: 좋아. 내가 공을 잡고 '당근'한테 던진다

코치: 아니지, 넌 '누구'한테 던져야지

선수: '당근'

코치: 아니지, 넌 '누구'한테 던져야지

선수: 당근이지

코치: 그렇지

선수: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코치: 아니지, 네가 한 번 물어봐

선수: 내가 공을 '누구'한테 던진다고?

코치: 당근이지

선수: 자, 형이 물어봐

코치: 네가 공을 '누구'한테 던져?

선수: 당근이지

코치: 그렇지



결국 이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선수: X발! 똑같잖아!

불통이 가져오는 분노

사실 우리는 이미 이 구분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일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의식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날아오는 야구공을 잡을 때 야구 선수가 미적분으로 야구공의 궤도를 계산하는 건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뇌를 장식용으로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다. 하지만 논증을 치밀하게 분석하려면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글쎄, 〈1루수가 누구야?〉처럼 재밌는 말장난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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