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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Aug 09. 2017

포켓몬은 진화하지 않는다

포켓몬GO를 금지한다?

포켓몬GO가 유행하던 시기.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포켓몬GO를 금지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포켓몬의 세계관이 기독교의 교리에 배치되는 진화론에 기반하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이런 일을 벌인 기독교 단체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언론 보도는 제목에서 "기독교인"을 운운하지만, 정확히 어떤 기독교 단체가 포켓몬GO 금지령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심지어 실제 사례로 제시된 것도 기독교가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이슬람교 단체다. 무책임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종교적인 이유로 포켓몬GO를 플레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가능하다. 그 주장을 실제로 한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일 뿐.

실제로 사람들은 이 주장을 두고서 갑론을박하지 않았는가?


포켓몬GO 금지령 옹호 논변

(1) 기독교도는 기독교 교리와 배치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2) 포켓몬GO는 진화론을 채택한다.
(3) 진화론을 채택하는 것은 기독교 교리와 배치된다.
(4) 포켓몬GO는 기독교 교리와 배치된다.
(5) 기독교 교리와 배치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기독교 교리와 배치되는 행위다.
(6) 포켓몬GO를 플레이하는 것은 기독교 교리와 배치되는 행위다.
∴ 기독교도는 포켓몬GO를 플레이하면 안 된다.



포켓몬GO를 지키는 방법

(실제로 제기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를) 이 주장에 반감을 느낀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1. "고작 게임인데 왜 난리냐?"

단순히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가 기독교 교리와 배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로 들린다. 전제 (5)를 공격하는 것.


포켓몬GO가 그 자체로 기독교 교리와 맞지 않더라도 그걸 플레이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는 것.

"게임을 직접 개발한 것도 아니고. 게임에 나온 세계관이 진리라고 떠들고 다닌 것도 아니고. 창조론을 배경으로 한 게임을 비난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 좀 보겠다는데 왜?"

"이미 만들어진 게임을 하는 것일 뿐이다"

전제 (5)가 무너지면

전제 (2)와 (3)이 참이더라도, 따라서 전제 (4)가 참이라고 하더라도

전제 (6)으로 나아갈 수 없다.



2. "창조론자도 얼마든지 진화론 받아들일 수 있는데?"

진화론은 창조론과 양립 가능하다는 것.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꼭 창조론을 내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창조된 생물이 진화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럼 창조론을 채택하는 기독교 교리와 진화론은 반드시 충돌할 필요가 없는 건데?" 전제 (3)이 거짓이라는 의견이다.


전제 (4)를 내세우려면 전제 (2)와 (3)이 모두 참이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전제 (3)이 거짓이면?

전제 (4)가 참이라는 주장을 펼치기가 어려워진다.


잠깐!


포켓몬GO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이들과 포켓몬GO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이들. 그런데 이들 모두가 빠뜨린 게 있다. 전제 (2), 포켓몬GO가 진화론을 채택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까? 포켓몬 세계는 정말 진화론을 딛고 서 있나?


당연하다고? 글쎄.


포켓몬은 진화하지 않는다

포켓몬의 세계에서도 진화가 일어날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무슨 소리야? 포켓몬이 진화하는 거 다 봤잖아?"

미안. 근데 포켓몬이 진화하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많은 사람들이 포켓몬의 진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진화가 아니다.

그럼 뭔가? 진화가 대체 무엇이기에?


I. 진화를 이끄는 것은 우연이다

꼬부기-어니부기-거북왕의 성장 궤도는 이미 그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꼬부기가 자라면 거북왕이 된다. 다른 것은 될 수 없다. 애벌레가 자라면 나비가 되듯. 올챙이가 자라서 개구리가 되듯. 과정의 종착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 이런 점에서 꼬부기가 거북왕이 되는 것은 진화進化가 아니라 변태變態에 가깝다.

그런데 진화의 시작점은 우연히 발생하는 유전자 변이mutations다. 따라서 진화의 과정도 불확정적이다.

미래 인류의 모습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다. 꼬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맹장은 사라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생물체는 낮은 확률로 유전자 변이를 겪는다. 부모를 비롯한 다른 개체에게는 없는 생물학적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눈 색깔이 다르다거나, 특정 박테리아에 대한 항체를 갖고 태어난다거나, 입이 두 개라거나, 콧구멍이 하나라거나, 손가락이 팔뚝에 달려 있다거나, 꼬리가 (안) 달려 있다거나.

이 변이로 인해 생존과 번식 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다행히 변이가 일어난 덕에 생존 및 번식 능력이 향상되었다면 비교적 더 많은 후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긍정적 변이 유전자는 후손에게 전해진다.

유전자 변이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생존과 번식 능력을 높여주는 유전자를 보유한 개체가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우연하게 나타난 생물학적 특성이 유전을 통해 점차 그 집단의 보편적인 특성이 되어 가는 것.

반대로 이런 생물학적 특성이 없는 개체 혹은 생존과 번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이를 겪은 개체는 빨리 죽거나 자식을 많이 못 낳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생물학적 특성은 후대로 전승되지 않는다. 도태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생물체 집단의 유전적 특성은 서서히 변화한다. 우연가리키는 방향으로. 이게 진화다.


II.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기린의 목은 키 큰 나무의 이파리를 먹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길어진 게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유전자 변이에 목적이 있을 리 없다. 목이 짧은 기린과 목 긴 기린이 태어나는 것은 우연이다. 그런데 목이 짧으면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목이 길면 잘 먹는다. 자연스럽게 목이 긴 녀석들이 오래 살고, 새끼도 많이 낳는다. 덕분에 목 길이를 늘려주는 유전자는 계속해서 후손에게 전달된다. 목 짧은 집안은 자식을 안 낳는다. 결과적으로 기린 집단의 목은 점차 길어진다. 살아남으려고 이렇게 진화한 게 아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게 곧 진화다.

잘 먹으려고 기를 써서 목이 길어진 게 아니다. 목이 긴 녀석이 잘 먹는 것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어떤 포켓몬은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변신한다. 가령 위험에 처했을 때 조금 더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포켓몬으로 모습을 바꾼다든가. 하지만 이건 진화가 아니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오징어가 먹물을 뿜는 것이 진화는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독한 냄새를 뿜는 스컹크. 이 능력은 진화의 산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냄새를 뿜는 행위 자체가 진화는 아니다.


III. 강자생존이 아닌 적자생존

경도 진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서식지에 있는 나무가 모두 낮았더라면, 기린은 아마 목이 짧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목이 너무 길면 낮은 곳에 위치한 나뭇잎을 따먹기가 어려울 것이고, 오히려 목이 짧은 개체가 먹이를 확보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목이 긴 기린이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강한 개체여서가 아니다. 우연히 실제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을 하기에 적합한 특성을 갖추고 있어서지. 때문에 그들의 생존은 강자생존强者生存이 아니라 적자생존適者生存이다.

어느 한 쪽이 뛰어난 게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 잘 맞거나 맞지 않을 뿐.

하지만 포켓몬은 성장함에 따라 강해진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거북왕이 꼬부기에게 패배할 리 없다. 이것은 주변 환경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IV. 지금-여기 진화는 없다

생존 및 번식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변이가 후손에게 전달됨으로써 해당 종 집단 전반의 유전자 구성에 일어나는 점진적 변화, 이게 진화다.


두 가지 지점이 중요하다.

첫째, 진화는 단일 개체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개체군 전체의 유전자 구성에 일어나는 변화다. 꼬부기가 거북왕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그래서 진화가 될 수 없다. 꼬부기 한 마리의 변화가 꼬부기 무리의 유전자 구성 전반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니까. 진화는 여기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둘째, 진화는 세대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진화는 반드시 후손을 낳음으로써 변이 유전자 형질을 전달하는 과정을 동반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는 매우 느리게 일어나고, 그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도 없다. 꼬부기의 탈바꿈은 미래에 태어날 그 후손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진화는 지금 일어나는 게 아니다.

바로 지금, 바로 이 피카츄를 "진화"시킨다는 신비로운 돌

포켓몬 세계에 등장하는 진화의 돌도 사실은 진화와 무관하다. 진화는 지금 당장, 여기에 있는 이 생물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창조론을 믿는 분들도 포켓몬GO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결론.


포켓몬도 "진짜" 진화할까?

많은 사람들이 진화라 생각했던 것, 가령 꼬부기가 거북왕이 되는 것은 진화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가짜" 진화가 아닌 "진짜" 진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포켓몬도 생물체니까?


그건 정확히 알 수 없다. 특정 포켓몬 집단의 유전자 구성이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하는 것을 관찰한 적이 없으니까.

피카츄들의 유전자 구성이 세대에 걸쳐 변화하는 걸 관찰한 적 있나요?

하지만 진화의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포켓몬에게도 유전자 변이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포켓몬 진화론자(?)에게 로켓단의 나옹이는 특별하다. 다른 나옹이와 달리 인간의 말을 구사하는 로켓단 나옹이.  독특한 능력은 확실히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닝겐의 말을 할 줄 아는 로켓단 나옹이

어쩌면 포켓몬의 진화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그렇다면 포켓몬이 진화하지 않는다는 말은 좀 지나친 것 같다. 고쳐 쓴다.

"포켓몬은 그런 식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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