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와 정의의 문제
플라톤의 『국가』가 말하는 정의로운 이는 오로지 철학자뿐이다. 평범한 시민은 정의롭지 않다. 영혼을 이루는 세 부분인 이성과 기개, 욕망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에야 비로소 그 영혼의 주인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성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네는 언제 천한 정비공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보는가? 오직 그 사람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성]이 자연적으로 쇠약해 그 사람 안에 자리한 짐승들[욕망]을 통치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그저 그 짐승들에 복종하거나 그 짐승들의 비위를 맞추는 법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때가 아니겠는가? (…) 그렇다면 그러한 자가 가장 훌륭한 자[철학자]와 같은 (영혼의) 통치를 받도록, 곧 신성한 통치 원칙을 스스로의 내면에 품은 가장 훌륭한 자의 노예가 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겠는가? (…) 신성과 지성에 의해 통치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니 말이야. 물론 그 신성과 지성은 그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바로 그 사람의 것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바깥에서 비롯되어도 좋지. 그렇게 같은 통치와 지도를 받으니 우리 모두가 최대한 가까워지고 또 친밀해지지 않겠는가?
『국가』 590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