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을 하고, 설명을 요구하는 일. 누구나 흔히들 하는 일이다. 그런데 설명을 한다는 게 정확히 무엇일까? 어떤 현상이 더 이상 놀라운 것으로 다가오지 않게 (혹은 덜 놀라운 것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인가? 글쎄, 하늘이 왜 파랗게 보이는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현상은 우리에게 별로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 아니면 그 현상에 대한 원인을 기술하는 것인가? 글쎄, 수학 문제에 대한 설명은 인과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칼 헴펠Carl Hempel은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어떤 현상 P를 설명한다는 것은 (논증의 형식을 통해) 특정한 자연법칙과 초기 조건이 주어진다면 그 현상이 필연적으로 혹은 확률적으로 따라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걸 포괄법칙적 모형covering-law model이라 부른다. 이 이름엔 현상이란 일련의 자연법칙에 의해 법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묻어 있다.
자연법칙의 성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포괄법칙적 모형에 따른 설명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I 연역법칙적 모형
연역법칙적 모형deductive-nomological model에 따르면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은 (1) 특정한 조건 C와 (2) 일반적 자연법칙 L이 주어진다면 그 현상이 필연적으로necessarily 발생함을 보이는 것이다. 헴펠은 이 모형을 다음과 같이 논증의 형태로 표현한다.
"물방울이 왜 맺히냐고? 온도와 습도가 이러저러하고, 이러저러한 자연법칙이 있기 때문이지."
C가 성립한다는 문장과 L이 존재한다는 문장이 모두 참이면, 설명되는 현상(=피설명항explanandum)이 발생한다는 문장 역시 필연적으로 참이 된다는 연역 논증deductive argument이다.
가령 얼음물이 담긴 물통에 물방울이 맺히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1) 현재 온도와 습도가 얼마라는 식의 특정한 조건이 성립하고 (2) 특정 조건이 성립하면 공기 중 물 분자는 액화한다는 식의 일반적 법칙이 존재하면, 그 현상 역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연역법칙적 모형은 모든 현상이 결정론적으로 발생한다는 형이상학적 전제가 참인 한에서만 유효하다. 모든 과학적 현상이 (1) 특정 조건과 (2) 특정 자연법칙이 주어지는 한 반드시 발생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II 확률통계적 모형
헴펠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확률통계적 모형probabilistic-statistical model을 제시한다. 이 모형에 따르면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은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그 현상이 이러저러한 통계적 확률로 발생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 역시 다음과 같은 논증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가령 (1) 사람 i에 대한 인슐린 투여 F가 성립했다는 문장과 (2) 인슐린 투여가 이루어질 때 혈당 수치 감소 O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문장이 모두 참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혈당 수치 감소 현상이 발생한다는 문장 역시 개연적으로probably 참이라는 논증은 매우 그럴듯하다likely.
몇 가지 짚고 넘어갈 것. ① (연역법칙적 모형과 달리) 확률통계적 모형에 따른 설명을 논증 형태로 나타날 때는 전제와 결론 사이에 이중선이 그어져 있다. 이는 전제들이 결론을 필연적으로 함축하는 게 아니라, 다만 결론이 참일 개연성만을 담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확률probability와 가능도likelihood의 차이. 확률은 통계적인 의미로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빈도frequency를 나타낸다. P(O, F)는 인슐린을 투여하는 사건과 혈당이 감소하는 사건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반면, 가능도는 귀납 논증inductive argument이 올바른 정도를 나타내기 위한 척도다. (1) i에게 인슐린을 투여했고 (2) 인슐린을 투여받은 사람의 혈당은 낮아질 확률이 매우 높으므로, i의 혈당은 낮아질 것이라는 논증은 가능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 이 논증은 그럴듯하다.
확률통계적 모형은 현상이 반드시 결정론적인 방식으로 발생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법칙적nomological이다. 어떤 현상이 발생하면 다른 현상도 특정한 확률로 발생한다는 법칙을 요구하기 때문.
Carl Hempel, "Two Models of Scientific Explanation," in Yuri Balashov & Alexander Rosenberg, ed., Philosophy of Science: Contemporary Readings (London: Routledge, 2002): 45-55
그런데 포괄법칙 모형은 오늘날 널리 수용되지는 않는다. 설명항explanans과 피설명항의 자리가 뒤바뀌는 걸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왜 문제일까?
전제(1)과 결론을 뒤바꾸어 만든 이 논증도 올바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1) 얼음물이 든 물통에 물방울이 맺히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사실과 (2) 수증기의 액화에 대한 자연법칙을 알고 있다면, 온도와 습도 등 조건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포괄법칙 모형에 따르면 (1)과 (2)를 통해 특정한 수준의 온도와 습도가 왜 성립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왜 현재 온도와 습도가 이러저러한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때, 물방울이 맺혔으며 이러저러한 자연법칙이 성립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건 이상하다. 이건 설명이 아니다. 이럴 때 제시해야 할 설명은 난방기와 가습기를 어찌저찌 설정했다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포괄법칙 모형은 물통에 물방울이 맺히는 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다른 조건과 자연법칙에 대한 언급을 생략해도 무방하다면) 이를테면 "물통의 온도가 낮기 때문"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왜 물통의 온도가 낮은지에 대한 설명이 "물통에 물이 맺히기 때문"이라는 식의 반직관적인 귀결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