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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Nov 07. 2019

조건문

명제 논리 #4

악당을 숭배하는 미니언즈


"악당이 간다면 우리도 간다." 악당이 간다는 조건이 충족되면 우리도 간다는 말이죠. "악당이 간다"는 문장 p와 "우리가 간다"는 문장 q를 이어서 만든 이 문장을 그래서 조건문conditional이라고 부릅니다.

기호로 나타낼 땐 조건문 연결사 를 사용해서 pq라고 쓰고, "if p, (then) q"라고 읽어요. 이때 문장 p는 전건antecedent, 그리고 문장 p는 후건consequent라고 하고요.


"악당이 가면 우리도 간다"는 조건문은 "악당이 가는데 우리가 안 가는 일은 없다"는 문장과 의미가 같습니다. pq와 ~(p&~q)는 동일한 진리값을 갖겠죠?

조건문이 꼭 인과 관계를 서술하는 건 아니에요. 전건과 후건이 각각 원인과 결과가 되는 사건을 기술하는 문장일 필요는 없다는 거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문장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사촌의 부동산 매입과 복통 사이에 어떤 인과 관계가 성립함을 암시하지는 않습니다.


조건문에 대해서는 교환 법칙이 성립하지 않아요. 전건과 후건의 순서를 바꾸었을 때 진리값이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헐크가 되면 거칠어지지만 거친 사람이 모두 헐크가 되진 않잖아요? pq가 참이라도 그 converse인 qp까지 참이란 법은 없습니다.


pq가 참일 때 그 inverse인 ~p~q가 반드시 참인 것도 아닙니다. "비가 오면 휴강이다"라는 문장이 참이라면 비가 오지 않을 땐 무조건 수업이 있다고 봐도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이유로 수업이 취소될 수 있는 거죠. 이 문장은 오로지 비가 오는 경우에 어떠하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어떠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요.


"비가 오면 휴강이다"라는 조건문은 비가 오지 않으면 휴강 여부와 상관없이 참이 됩니다. 전건이 거짓이면 조건문은 항상 참이 되니까요. 어차피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든 못 일어나겠어요?

일상에서도 비슷한 문장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네가 진짜 성공하면 내가 평생 네 노예로 일할게." 보통 이런 말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 분명할 때 하죠. 실제로 상대방이 실패한다면(=성공하지 못한다면) 노예가 되지 않더라도 거짓말을 한 건 아닐 테니까요.

그래서 이런 호언장담은 (참이라는 걸 알더라도) 그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후건이 진리값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요. 정말 이 사람이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노예가 될 의향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죠.


실상 이건 선언지 부가addition로 인해 정보의 질이 떨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네가 성공한다"는 문장 p가 거짓이라면 "평생 네 노예로 일할 것이다"는 문장 q의 진리값과 무관하게 이들 문장을 각각 전건과 후건으로 두는 조건문 pq는 참이 되죠?


선언지 부가?


마찬가지로 ~p는 참이니까 여기에 문장 q를 선언 연결사로 붙여 만든 ~pq는 q의 진리값이 무엇이든 참이 될 겁니다.

그러고 보니 p→q와 ~p∨q는 언제나 같은 진리값을 갖겠군요. "내 밑에서 일할 생각이 없으면 나가야 한다"는 말은 곧 "내 밑에서 일하든 나가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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