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논리 체계는 문장을 최소 단위로 삼아요. 그래서 문장을 더 잘게 쪼개어 분석하지 않고, 또 여러 종류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런 논증을 생각해봅시다.
모든 사람은 동물이다 모든 동물은 생물이다 ∴ 모든 사람은 생물이다
이 논증은 직관적으로 타당해 보이죠? 모든 사람이 동물이고, 또 모든 동물이 생물인 다음에야 모든 사람이 생물이 아닐 수가 없을 테니까요. 실제로도 이 논증은 타당합니다. 이걸 명제논리 체계로 엄밀하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명제논리 체계에서 이 논증은
p q ∴ r
이렇게 기호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나니 도저히 그 타당성을 확인할 수가 없어요. 직관적으로도 올바른 논증이라고 생각되지도 않고요. 왜 그럴까요?
자연 언어가 기호화되면서 너무 많은 것이 생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기호가 담아내지 못했던 건 무엇일까요?
전제가 되는 두 문장은 공통적으로 동물을 언급합니다. 또 결론에서 언급되는 사람과 생물은 각각 전제 1과 전제 2에서 언급되는 것들이죠. 문장들끼리 갖는 이런 공통점은 명제 논리 체계가 반영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논리 체계가 필요한 거죠.
지금 필요한 건 바로 정언논리categorical logic 체계입니다.
정언논리 체계의 기초를 닦은 아리스토텔레스
정언 문장
정언논리 체계는 정언 문장을 다뤄요. 그럼 정언 문장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겠죠? 정언 문장은 특정 범위 내에 존재하는 개체 전부 혹은 일부가 어떤 범주에 속한다고 혹은 속하지 않는다고 진술하는 문장입니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
가령 이 문장은 정언 문장이에요. 왜냐하면 이 문장은 까마귀들의 집합이라는 특정 범위 내에 존재하는 개체(=까마귀) 전부가 검은 것들의 집합이란 범주에 속한다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언 문장은 4가지로 나뉘어요
예전엔 다른 용어를 많이 썼어요. A문장은 전칭 긍정universal affirmative, E문장은 전칭 부정universal negative, I문장은 특징 긍정particular affirmative, E문장은 특칭 부정particular negative이라고요. 익히기 쉽다는 장점은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정확한 용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I문장과 E문장은 특정 범위 내에 속하는 개체 일부(e.g. 어떤 펭귄(들))에 대한 문장이지, 특정한particular 개체(e.g. 펭수, 뽀로로 등)에 대한 문장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A, E, I, O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는 각각 긍정을 뜻하는 라틴어 affirmo와 nego에서 따온 것이에요.
정언 문장은 어떻게 참 혹은 거짓이 되는가
정언 문장의 진리 조건은 벤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빗금은 그곳에 원소가 없어야 된다는 의미고, 동그라미는 그 자리에 원소가 최소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다른 표식을 사용해도 전혀 상관없어요.) 달리 표시가 없는 부분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 진리 조건을 충족하면 정언 문장은 참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 되고요.
A문장: 모든 사람은 동물이다
이 말은 곧 사람이면서 동물이 아닌 건 없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사람들의 집합(F)에는 속하되 동시에 동물들의 집합(G)에는 속하지 않는 그런 원소는 없어야만 합니다.
E문장: 모든 남자는 여자가 아니다
이 문장은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인 것은 없다는 걸 의미하죠. 따라서 남자들의 집합(F)과 여자들의 집합(G)의 교집합이 공집합이어야 합니다. 거기에 원소가 있으면 안 돼요.
I문장: 어떤 사람은 성인이다
이건 사람인 동시에 성인인 존재자가 적어도 하나는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집합(F)과 성인들의 집합(G)의 교집합에 원소가 최소 1개는 있어야 하죠.
O문장: 어떤 사람은 범죄자가 아니다
마지막 이 문장은 사람이되 범죄자가 아닌 것이 최소 하나 존재한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집합(F)에 속하되 범죄자들의 집합(G)에는 속하지 않는 원소가 적어도 하나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