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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Feb 18. 2020

양화사를 여럿 둔 문장

술어 논리 #7

양화사를 여럿 둔 문장


변항을 2개 이상 품은 열린 문장이 진리값을 갖기 위해선 그에 맞게 양화사도 2개 이상을 두어야 합니다.


가령

Lxy: x는 y를 사랑한다

가령 이런 열린 문장은 양화사 둘이 나서서 변항 x와 y를 각각 속박해주어야 비로소 진리값을 가질 수 있게 되죠. 헌데 그렇게 양화사를 여럿 둔 문장은 이해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요. 두 양화사 중 어떤 것이 먼저 열린 문장에 결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두 양화사가 같은 종류일 땐 그 순서가 바뀌어도 문장의 의미는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x)(∀y)Lxy ≡ (∀y)(∀x)Lxy

위 두 문장은 서로 의미가 같아요. "모든 x와 y에 대하여, x는 y를 사랑한다"는 말은 곧 모두가 모두를 사랑하고, 또 모두가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의미가 되겠죠. x와 y의 자리에 무엇을 넣든 참이 될 것이니까요.


다음과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에요.

(∃x)(∃y)Lxy ≡ (∃y)(∃x)Lxy

이들 두 문장은 "어떤 x와 y에 대하여, x는 y를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쉽게 풀자면 사랑을 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또 사랑을 받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거죠. 사랑을 하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리하여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이 문장은 참이 됩니다.

이 영화 속 세계에선 이 문장이 참이겠군요.


 가지 다른 양화사를 둔 문


문제는 열린 문장 하나에 종류가 다른 양화사 둘이 붙을 때다. 4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문장 ①과 ②는 어떻게 다를까?

문장 ①은 (∀y)Lxy라는 열린 문장에 재 양화사 (∃x)가 붙어 만들어진 문장입니다. 곧 (∀y)Lxy를 참으로 만들어주는 x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럼 (∀y)Lxy는요? y자리에 무엇을 넣는 "x는 y를 사랑한다"는 말이 참이 된다는 거죠? 곧 x가 모든 사람을 사랑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문장 (∃x)(∀y)Lxy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말이 돼요. 이 박애주의자가 누군인지 혹은 몇 명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있기는 있다는 거죠.


문장 를 구성하는 열린 문장 (∃x)Lxy은 y를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보편 양화사 (∀y)가 결합하여 y가 무엇이든 (∃x)Lxy는 참이  것임을 나타내죠. 곧 y가 누구든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란 말이 돼요. y가 아무리 슈렉처럼 못생기고 야수처럼 험악해도, 피오나와 미녀처럼 그 y를 사랑하는 이가 존재한다는 거죠.


이걸 그림으로 나타내면 이렇습니다.

문장①이 참이면 문장② 역시 참입니다.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아요.


문장 ③과 ④도 살펴봅시다.

문장 ③은 모든 사람이 y를 사랑한다는(=y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열린 문장 (∀x)Lxy 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y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y)(∀x)Lxy 그래서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에 대한 문장이 돼죠.

반면 문장 ④는 누구나 사랑이란 것을 한다는 말을 하고 있어요. 열린 문장 (∃y)Lxy는 x가 누군가를 사랑함을 뜻합니다. 그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말이니까요.

여기에 보편 양화사 (∀x)가 붙습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x에게(=모든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나타내죠. 그 x가 조커와 타노스와 같은 악당이라 하더라도, 어머니와 딸 가모라 등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는 겁니다.

역시 문장 ③의 참은 문장④의 참을 함축하되, 그 역은 성립하지 않아요.


양화사 도치 오류


문장을 구성한 두 양화사의 종류가 다를 땐 이렇게 그 순서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걸 혼동할 때, 특히 문장 ②로부터 문장 ①을 혹은 문장 ④로부터 문장 ③을 추론할 때 양화사 도치 오류quantifier shift fallcy를 범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겐 어머니가 있다"는 전제로부터 "모든 사람을 낳은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황당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게 양화사 도치 오류에 해당합니다. 어떤가요?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런 오류를 범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드시죠? 하지만 이건 모든 사람을 자녀로 둔 여성이 없다는 게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도 이런 오류를 범했거든요. 그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서 신, 그러니까 필연적 존재자(=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자)가 있음을 주장하서 이런 드립을 던집니다. 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자가 우연적 존재자(=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자)라고 가정한다면 그릇된 결론으로 치닿게 될 것이란 귀류법을 시전하는 것이죠.

(1) 이 세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2) 모든 존재자는 우연적 존재자다. 이들 각각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3) 그렇다면 이 세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 따라서 모든 존재자가 우연적 존재자인 것은 아니다. 필연적 존재자가 있다.

일단 그는 無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란 있을 수 없다는 거죠. 일단 이 생각을 담은 전제1에는 딴지를 걸지 않겠습니다. 논리학에서 중요한 건 문장의 진리값이 아니라 논증의 타당성이니까요. 문제는 전제2에서 전제3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에요.


아퀴나스는 존재자 각각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 그들 모두가 한꺼번에 존재하지 않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전제2으로부터 전제3을 이끌어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가능성(전제3)無란 있을 수 없다는 그의 근본 신념(전제1)과 정면으로 충돌. 때문에 아퀴나스는 모든 존재자가 우연적 존재자라는 가정(전제2)이 거짓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게 돼요.

하지만 모든 존재자가 우연적 존재자란 가정은 정말로 無의 가능성을 함축할까요? 전제2가 참이라면 전제3도 반드시 참인 걸까요?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는 누구나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출전한 모든 선수가 한꺼번에 금메달을 따는 건 불가능하죠. 금메달은 오직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 선수 1명에게만 수여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형이상학적 구조상 모든 존재자가 우연적 존재자이기에 이들 각각이 존재하지 않을 수는 있으되, 그 모든 존재자들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불가능하다는 말과 어느 것이나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말은 모두 참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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