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迷信]

붕괴된 관계에서 미신이 주는 힘

by 탐진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감정은 두려움이며,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두려움은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이다.

─ H. P. 러브크래프트


미신[迷信],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미신을 아무런 과학적·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오늘 하루를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속 편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에 휩싸여 자신의 운명과 자유를 타인에게 의존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심리적 불안감과 함께 이러한 인간의 성질을 지적한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555년 경부터 예언서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그 예언서에서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예언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지구가 점점 망할 것 같다는 느낌은 들어도 아주 끝장나지는 않았으니 그 예언은 틀렸다고 할 수 있겠다. 예언서를 낸 시점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야 예언서 속 내용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지적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꽤 각광받았고 그는 '예언가'로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 시대에 예언가로 추앙받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멸망설만 봐도, 예언은 대체로 근거 없는 헛소리다. 혹여나 그의 예언이 맞았다면 진짜 알고 있었다기보다는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다. 그런데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이야기임을 우리는 머릿속으로는 다 알고 있지만, 예언과 결이 비슷한 사주명리나 점복학 등을 오늘날에도 업으로 삼거나, 자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은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인류가 필연적으로 가지는 성질이 아닌가 싶다.


이별의 후유증


이별의 원인은 다양하다. 모든 사람이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서로 인연을 맺으면 참 좋겠지만,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이유가 원인이 되어 어떤 사람은 관계에서 불안을 과도하게 느끼며 집착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대화조차 하지 않고 회피하기도 한다. 때론 두 사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전혀 예기치 못한 외부적 상황이나 문제가 그들 사이를 갈라놓을 수도 있다.


사랑의 가장 큰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록 잠시라고는 해도

우리에게 심각한 행복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어떤 관계였든지 간에, 마음을 많이 주었던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쓰라린 일이다. 후회와 자책, 분노나 원망, 그리고 증오 등 온갖 불편한 감정이 이별을 겪으며 마음속에서 휘몰아친다. 사랑했을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지만, 행복했던 만큼 이별이 주는 고통도 크다. 누군가는 감당하기 힘들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이유가 없고, 실연엔 약도 없다는 게 우리의 가장 큰 문제다.


선택적 지각 오류


나는 아직 그 사람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떠나갔다. 내 마음을 잔뜩 어지럽히고 그냥 가버렸으니, 정리하고 수습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극도로 불안한 기질 탓에 혹시 나에게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지는 않을까, 지금 그 사람이 날 너무 싫어하고 있지는 않을까, 부정적인 목소리만 마음속에서 커져갔다.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드라마나 영화, 유튜브 영상 따위를 틀어놓으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채워 넣어야만 나는 그나마 진정이 되었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타로카드 영상이 흘러들어왔다. 내가 어제 본 영상은 어느새 조회 수가 2만 회가 다 되어간다. 나와 같이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워하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처럼 이 영상들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타로카드를 읽는 사람이 찰나의 순간에 나와 그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했어도, 우리는 맞는 이야기만을 선택적으로 들으며 홀린 듯 빠지게 된다. 그 사람이 내게 절대 해주지 않을 무의식이나 속마음을 듣다 보면 헛웃음도 나온다. 그럴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토록 냉정했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데도 제삼자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그 사람의 속마음은 나를 그리워한다, 사랑한다, 재회를 기다린다 같은 터무니없어도 기분은 좋아지는 이야기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선택적 지각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의 딸, 카산드라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게 되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언 능력을 손에 얻는다. 하지만 예언 능력을 손에 얻자마자, 약속했던 아폴론과의 사랑은 거부하는데 이에 분개한 아폴론은 그녀로부터 '설득력'을 빼앗아간다. 결국 그녀가 하는 예언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듣고 싶은 부분만 듣고 있는 이 타로카드 리딩이 정말 그대로 이루어질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과 달콤하고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는 이야기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의 마음을 조금도 달래주지 않는 쓴소리가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정답일 수 있다. 당신이 그저 믿으려 하지 않을 뿐. 그럼에도 어차피 내 기분 좋자고 듣는 거니 무엇을 더 마음속에 담아두고 조언대로 행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영상 속 타로카드가 말하는 대로, 며칠, 몇 주, 혹은 몇 개월 내로 그 사람과 재회가 정말로 가능할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는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끊어져 버린 그 사람만이 정답을 쥐고 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한 것일까.


상실의 아픔은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 며칠, 몇 주, 아니면 몇 개월 뒤가 될 때까지 힘든 시간을 헛된 희망으로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우리는 그 사람과의 재회가 아닌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사건과 마주할 수도 있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익숙한 곡이 생각나는 이 문장은 라틴어로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그와의 열정적이었던 사랑도, 냉정했던 헤어짐도 우리의 운명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어쩌면 기나긴 견딤 속에서 더 좋은 일이 운명처럼 다가올 수도 있으니, 한 번 기대해 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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