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식은 카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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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는 감자고, 토마토는 토마토
그래서 알루 토마토는 감자와 토마토를 넣은 카레
알루(Aloo)는 힌디어로 감자를 뜻한다.
그리고 토마토는… 그냥 토마토다.
그래서 알루 토마토는 감자와 토마토를 넣은 카레다.
한 달간의 긴 인도 배낭여행의 마지막 날, 수많은 인도의 카레 중에서 마지막으로 먹었던 그 밤의 카레는 '알루 토마토'였다. 카레야 늘 잘 먹던 음식이었지만, '좋아하는 음식?'에 자신 있게 '카레!'를 외칠 수 있게 된 건 이때의 영향이 크다.
뉴 델리의 저녁. 마침 거리에선 지역 축제의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고, 옥상 레스토랑에는 작고 반짝거리는 작은 전구들이 장식되어 있어 그날의 밤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아주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먹은 카레라 더욱 인상 깊었던 걸까? 만약 다른 카레를 먹었더라면, 제목이 '팔락 파니르'나 '치킨 티카 마살라'가 되었을까? 아니, 물론 그때의 추억이 '알루 토마토'라는 음식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도 맞지만, 그냥 '알루 토마토'는 너무 맛있다. 애초에 토마토와 감자는 실패할 수가 없다.
인도식 카레 하면 흔히 향신료와 요거트가 들어가 크리미 한 맛을 상상한다. 난에 푹 찍어 먹었을 때 '역시 인도카레는 이 맛이지!' 하는 그런 맛. 반면에 '알루 토마토'는 한국식 카레나 일본식 카레, 혹은 이탈리아 음식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라고 하면 좋겠다. 본고장의 카레가 익숙하지 않다면 '알루 토마토'는 필승의 맛이다. 카레에 토마토를 넣어 살짝 짭짤 매콤해지고, 거기에 포슬포슬한 감자까지.
…사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그때의 맛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날 먹었던 '알루 토마토'에 대해서 그저 하염없이 '맛있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니.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어떤 것에 대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느끼고 글을 쓸 때도 아니었고…. 긴 시간이 흐르며 그때의 체험은 서서히 마모되었다. 남은 건 '알루 토마토'라는 이름과 그냥 '너무 맛있었다'는 얄팍한 감상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화자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자 모든 기억들이 비의지적으로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잃어버린 '알루 토마토'를 찾기 위해서는 다시 인도로 날아가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레를 너무 좋아하는 여성에게 주어진 운명은 참 가혹하다. 인도는 남자도 그렇겠지만, 여자 혼자의 몸으로는 더욱 가기 어려운 나라다. 인도 현지인 남성들에 의한 온갖 사건사고가 잊을만하면 들려온다. 나 또한 생명의 위협까진 아니더라도 인도에서 상당히 불쾌한 경험을 맛본 기억이 있기에, 그렇기에 아직도 다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카레에 퐁당 들어간 감자와 토마토처럼 그냥 잘 어울리면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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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투더 카레
아사쿠사바시역 서쪽 출구의 카레, 히노야 카레
혼자 일본을 갔을 때, 잡은 숙소 근처에 카레집이 있었다. 아주 작은, 녹색 간판의 가게였는데, 운명에 몸을 맡기는 편인 나는 일본으로 떠날 때 그런 부분을 체크하지 않았기에 그 카레집은 정말 우연한 만남이었다. 사실 그렇게 마주치고도 모처럼 일본까지 왔으니까, 싶어서 애써 외면했다. 시간은 짧고, 내 입도 짧고, 한국에서도 카레를 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발권기에서 카레로 가는 티켓을 구매해 버렸고….
종착지는 명물 카츠 카레(名物カツカレー),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돈가스 카레 덮밥'. 내가 고른 메뉴는 밥 위에 돈가스 위에 카레를 듬뿍 얹은 메뉴였다. 맵기 조절도 되었던가, 상당히 매콤했던 기억만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어쩌다 카레에 진심, 일본
일본에서는 다양한 카레 대회가 많이 열린다. 어쩌다 일본은 카레에 진심이 된 걸까?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을 경유해 일본으로 간 음식이 대회까지 꼬박꼬박 한다니. 가장 유명한 대회는 매해 도쿄의 칸다 지역에서 열리는 칸다 카레 그랑프리가 아닐까. 여기서 우승한 카레는 레토르트 식품으로도 출시될 정도다. 그리고 내가 방문했던 히노야 카레도 2018년도에 그 우승의 영광을 맛본 카레 가게 중 하나였다. 트로피가 보증하는 녹진한 카레맛에, 내가 좋아하는 매운맛이 땀을 뻘뻘 흘리게 만들며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때 그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카레가 얹어진 돈가스가 마지막 한 조각까지 눅눅해지지 않고 바삭했던 것. 히노야 카레 튀김옷의 비밀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보고 싶은 의문이다. 가게 문을 나서며 '앞으로 일본에 간다면 빠지지 않고 들리리라, 히노야 카레'하고 결심했지만, 아쉽게도 그 이듬해에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코로나가 창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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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기억들은 모두 다 카레
어느 음식이나 지역에 따라 변주되는 특징을 보인다. 밥이 주식인지, 밀가루가 주식인지, 해산물이 많은지, 어떤 동물은 신성시하는 관계로 다른 고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지 등 음식은 온 세상을 떠돌다가 저마다의 지역에서 발전하고 또 발전한다. '카레'도 이런 특성을 강하게 띠는 음식 중 하나다. 카레의 장점은 카레의 기본 문법만 잘 지킨다면 재료로 무엇을 넣든 괜찮다는 것 아닐까. 여행 중 들른 식당에서는 그 나라나 지역만의 특산물이 들어가면 좋고, 우리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에는 어제 먹다 남은 재료를 때려 넣으면 된다. 오늘 아침 먹었던 카레에는 감자, 당근, 그리고 지난번에 당근이랑 같이 할인하길래 충동구매했던 팽이버섯이 들어가 있었다.
카레와 곁들여 먹는 재료 역시 지역마다의 국룰(*국룰[國+rule], 나라마다 암암리에 통용되는 저마다의 규칙. 보다 좁은 지역에만 해당되는 규칙을 말할 때에도 쓴다)이 있다. 인도에서 카레를 먹었을 때에는 ─ 밥이라는 선택지도 물론 있었지만 ─ 모처럼이니 저렴한 가격에 실컷 즐기자며 난과 함께 먹었고, 일본에서 카레를 먹었을 때에는 밥, 돈가스 그리고 후쿠진즈케와 함께 먹었다. 때론 밥이 아닌 우동면이 주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카레를 먹는다면 김치가 한국스러움을 느끼게 해 주겠지. 여기에 우리 엄마가 만든 청양고추 멸치 볶음도 살짝 넣어주면 살짝 매콤해지며 맛이 좋아진다고 말하고 싶지만 … 이건 너무 개인적이라 넘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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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카레
나는 집에서 카레를 먹으며 이 글을 썼다.
카레, 맛있다.
얼마 전에 '십오 년 동안 한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이라는 주제로 짤막한 글을 썼다. 그때는 건강도 생각할 겸 무난하게 오래 먹을 수 있는 샐러드파스타를 썼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15년 동안 카레를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졌다. '이우진 씨, 저 그냥 샐러드파스타 말고 카레 먹을래요. 야채 듬뿍, 감자도 큼직하게 썰어서, 달콤하고 매콤하게 해 주세요.'
저녁엔 술안주로 카레맛 과자를 좀 사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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