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추억은 33 RPM

프롤로그

by 김기린
사실 난...
음악만 들려준 것이 아니었다구


나는 턴테이블. 이름은 DP-400이다.

모든 걸 줄여 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가리켜 ‘턴’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를 통해서 LP를 듣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는 사람들과 LP를 이어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셈이다.


사실 우리는 좀 예민하다.

먼지나 작은 흠집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커다란 원판이 있다는 공통점 외에 가격과 성능은 각양각색이다.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처럼 생김새도 조금씩 다른데, 어떤 녀석은 가방에 넣어져 평생을 답답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내가 그의 집 거실에 새롭게 초대를 받은 건, 코로나가 지금처럼 이렇게 길어질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2년 전쯤이다. 그와 친구가 된 건 우연이었겠지만, 난 그의 오랜 친구였던 형을 통해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형은 지금 좀 아프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 한 장씩 그래서 딱 365장의 LP를 모으겠다고. 그럼 365개의 추억이 생긴다나? 그 말을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던 그였다. 물론, 지켜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추억이 그만큼 늘어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는 어릴 적,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만날 수 있던 그 친구는 외형부터가 좀 남달랐단다. 왜소하다고 해야 하나? 그것은 당시 유행하던 저가의 오디오 기기 중 하나였던, '뮤직 콤보'였다. 하지만 우리처럼 오디오 기기 가장 높은 곳에서 거실을 내려다보던 턴테이블이 없던, 좀 이상한 녀석. 대신에 녀석만의 필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CD였다. 원터치로 작동하는 그것은 우리처럼 바늘을 올리지 않아도 소리가 났다.

그 CD란 녀석을 나도 좀 안다. 지름이 12㎝ 정도로 LP에 비하면 크기가 절반도 안 되는 앙증맞은 크기. 흠집이 잘 나지 않고 우리처럼 먼지에도 민감하지 않았다. 화장을 한 듯 반짝이던 모습은 도시의 아가씨처럼 도도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점차 그런 CD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쉽게 유행을 좇는 사람들은 점차 우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소리도 깨끗하고 휴대하기도 좋다는 소문은 금세 퍼져 나갔고 소풍이나 수학여행의 필수품이었던 워크맨을 책상 서랍 속에 잠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시장에서 국밥을 파는 할머니도 디지털을 외치는 21세기의 도래 앞에 우리는 설 자리를 잃은 고리타분한 구닥다리 물건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지구가 돌 듯 턴테이블도 돌아야 하는데... 우리들은 점점 쉬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가만히 먼지를 뒤집어쓰고 거실 한쪽으로 밀려나다, 하나둘 창고에 처박히기 시작했다. 형도 그랬다.


창고란 모름지기 슬픈 곳이다.

창고는 빛이 들지 않아 늘 습했고, 온종일 깜깜해서 가뜩이나 우울한 기분을 더 슬프게 했다. 형은 그와의 추억이 떠올라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습했던 창고가 더 습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형은 생각했다. 창고가 습한 건 어쩌면 주인에게 외면받고 창고로 옮겨진 모든 것들의 눈물 때문이라며....


창고에 처박힌 신세가 된 우리들은 이사 갈 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고, 운 좋게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분리수거장이나 고물상 그리고 중고매장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추억도 기억 한편으로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가 군대에 가고 여자 친구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그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올라가고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었다. 그가 그랬던 거처럼.

그때까지도 형은 창고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동안 몇 번의 이사가 있었지만, 창고에서 창고로 이어지는 신세는 변함이 없었다. 그가 한 번쯤 관심을 가질 만도 한데, 잊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게 다 포장이사 때문이라고 형은 생각했다. 주인이 짐을 옮기지 않으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 주인은 모를 것이다. 아니, 모른다. 모른다는 건 기억에서 잊혔다는 의미니까, 그래서 형은 더 슬펐단다. 그나마 분리수거장으로 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포장이사 덕분이라며 애써 위안으로 삼았지만, 내버려지더라도 이상할게 하나 없었다.


우리는
창고에 너무 오래 있었다

*

아침부터 창고 밖이 시끄러웠다.

뭐든 오래된 걸 버리기 좋아하는 그의 아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이 D-day인가 싶어, 형은 무척 가슴 졸이고 있었단다.

그가 아내의 성화에 창고 문을 열던 날, 창고의 오래된 물건들은 하나둘 창고를 벗어났지만 도착한 곳은 집 밖이었다. 그는 아내의 지시에 충실했던 것이다.

보나 마나 한쪽 팔을 잃은 변신 로봇과 함께 버려질 운명에 놓인 형. 형은 떨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창고 가장 깊고도 낮은 곳까지 미치자 창고 안은 서서히 서광이 비치고 있었지만, 형의 얼굴은 그만큼 어두워져 갔다. 형은 눈을 감았다.


“어!? 여기 있었네?”

그는 아무 말없이 물끄러미 형을 쳐다만 봤다. 유독 눈부신 바깥세상에 은박이 입혀진 형의 이름표가 반짝거렸고 그가 한쪽 눈을 찔끔 감았다. 그것이 반가운 윙크 같았지만, 형은 그가 미웠다. 싫었다.


시간이 멈춘 듯 한참이나 형을 들여다보던 그였다. 그때 형은 보고야 말았다. 그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는 걸. 그 순간 그는 형과의 모든 추억을 하나둘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멈춰버린 시계의 건전지를 갈아 끼운 것처럼... 그런 그를 형은 더는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형과 LP들은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속죄하는 죄인처럼 그는 턴테이블과 LP들을 닦고 또 닦았다. 먼지가 닦일수록 추억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거 같았다.

하지만 너무 오래 창고에 있었던 탓일까?

LP들은 군데군데 검버섯처럼 곰팡이가 피었고 상처는 깊었다. 마치 주홍글씨처럼 닦이지도 않았고 닦아지지도 않았다. 켜켜이 쌓인 것이다. 그것은 형도 마찬가지. 모든 회전 부위가 말을 듣지 않았다.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카트리지도 부러지고 없었다. 마치 전쟁터의 패잔병 같았다. 우리는 인제 그만 놓아 달라고 했다. 우리를 두고 떠나라며... 부디 좋은 추억만 간직해 달라 했다.


그가 나를 찾은 건 그즈음이었다.

다시 LP들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2년 사이 수백 장의 LP를 사들였다. 그사이 난 형에게 그와의 모든 추억과 플레이 리스트를 완벽히 인계받았다.

이제 난, 그가 나에게 해주었던 많은 이야기. 그리고 내가 형에게 들었던 이야기. 이를테면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어가던 과정들... 그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으로 추억하는 이야기를 그가 좋아했던 노래들과 엮어 하나하나 풀어놓을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힘든 거 같다.

그도 가끔은 그런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를 찾아와 그때 그 이야기를 한다.


오늘도 난 그와 추억을 함께한다. 33 RPM으로...



* 사진출처: Pixabay(StockS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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