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 제목은 퇴사 말고 휴직이랍니다.
지난 주말 아내의 추천으로 권남희 작가의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어대는 아내를 보며 궁금했는데, 나 또한 책을 보며 킥킥대며 웃을 수 있었다. 작가의 에피소드도, 간결하게 정리한 필력도 참 좋았다. 유쾌한 에세이었다. 아내도 이런 식으로 유머러스한 글을 써달라고 내게 당부했지만 쉽지 않아보였다. 어쩌면 글을 새롭게 배워야 할지도, 아니면 다시 태어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노트북 앞에만 앉으면 진지함으로 무장한 내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런 책들을 꾸준히 읽으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책 제목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목이 헷갈려 잘못 말할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연기자 박정민 씨의 책 제목에 대해 헷갈려 하는 부분도 재밌었다.
아, 얼마 전에는 "박정민 책, 『쓸데없는 인간』어디 있더라?"하고 찾았더니 정하가 『쓸 만한 인간』이야"라고 정정해 주었다. 이 제목도 왠지 나만 틀릴 것 같지 않아... (권남희,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중에서)
쓸 만한 인간이 쓸데없는 인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저자에게는 서운한 일이겠지만 그럴 법한 일이었다. 나 조차도 책 제목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다고 책을 안 읽었거나 책이 좋지 않아서 제목을 틀리게 말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변명(?)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재밌게 읽었다고 책 제목을 외워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이게 내게 특별히 재밌게 와닿았던 것은 권남희 작가의 경우처럼 내 책의 제목을 다르게 말하시는 분들을 종종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사 말고 휴직>을 감동 깊게 봤다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SNS에 공유해 주시기도 하시고, 강의에서 언급해 주시기도 하셨다. 참 고마운 분들이었다. 그런데 가끔씩 책 제목을 "다르게" 언급하신 분들이 있었다. 퇴직 말고 휴직, 퇴사 대신 휴직, 퇴사 보다 휴직 등 다양한 변주의 제목이 나왔다. 책이 잘 팔리려면 제목으로 검색이 잘 되어야 할 텐데, 제목이 조금씩 틀려서 아쉬웠다. 쓸 만한 인간을 쓸데없는 인간으로 바꿔버린 수준은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책 <귀찮지만 행복해질까>의 책 제목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다보니 내 책 제목을 언급하신 많은 분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언급해주신 그분들에게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이 조금 틀렸어도 충분히 내 책을 좋아해 주신 독자분들이셨으니까.
책 제목은 출판사 대표님이 직접 만들어 주셨다. 초고를 고치고 첫 번째 원고를 완성한 후 공모전에 신청할 때 대표님께서 들고오신 책 제목이 "퇴사 말고 휴직"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인상이 강했다. 뭔가 우리가 말하려는 바가 제목에 오롯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대표님은 내가 정리한 브런치 북을 보고 제목을 정하셨다고 하셨다. 몇 달 전 정리한 브런치북 "퇴직 보다 휴직"을 우연히 보신 대표님께서 그것을 응용해서 만든 제목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퇴직보다휴직>보다는 라임도 더 입에 들어 맞는 것 같았다. 아내의 반응도 좋았다. 직관적이라고. 임시로 정해놓은 제목이었지만 책 제목으로 결정해도 좋을 듯 싶었다. 결국 원고를 고치고 교정작업을 할 때까지 대안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처음 정한 가제를 제목으로 정할 수 있었다.
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선 이 책이 대상을 한정짓는 것은 아닐까 우려됐다. 소재는 휴직이었지만 꼭 휴직에 대해서만 말한 책은 아니었다. 휴직이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이었기에 휴직을 하지 않더라도 흔들리는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제목이 독자를 제한하는 것 같았다. 책 판매부수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았고. 하지만 대안이 나오지도 않았고 오히려 타깃을 좁히는 게 책을 선명하게 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그대로 밀어부치기로 했다. 진짜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고.
두 번째 걱정은 책 제목을 정할 때쯤 나온 <퇴사 말고 사이드잡>이라는 책 때문이었다. 뭔가 이 책을 따라하는 것 같기도 했고 표절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퇴사 말고 사이드잡은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이기도 했다. 작가님과의 인연도 있었다. 심지어 우리 아파트에 사시는 주민이기도 했고. 뭔가 작가님께 연락을 드려 이런 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 것 같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우연한 기회에 지하철 역에서 <퇴사 말고 사이드잡>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다. 조심스레 책 제목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으며 그게 뭐 대수냐고 답해주셨다. 오히려 자기는 좋다고 했다. 같이 퇴사 말고 시리즈로 뭔가 만들어 보자는 제안도 주셨다. 덕분에 작가님 공간에서 함께 북토크도 진행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많은 분들을 모으진 못했지만.
출간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제목이 참 중요하다고들 한다. 독자들이 처음 접하는 게 제목이니 독자의 흥미를 끄는 제목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서 책 제목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꽤 많이 보인다. SNS에서는 책 제목을 투표로 붙이는 작가나 출판사 분들도 종종 보인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아였다. 책 제목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선택해주신 대표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굳이 깔대기를 나로 끌어 들이자면 그만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퇴사 말고 휴직"이었으니 그게 대표님께 잘 전달된 것 같기도 하고.
내 책을 읽고 좋아해주시는 독자분들께 항상 감사하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고 했던가? 기왕이면 책 제목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사실 언급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기왕이면이라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된다. 뭐 사실 그걸 바란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휴직 말고 퇴사>라고 말해주신 분은 없으니 다행이지만!
PS. 남들 뭐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나도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귀찮지만 행복해질까>로 썼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