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초심 그리고 적정한 삶을 고민하다
2019년 1월,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제주로 향했고 오자마자 한라산에 올랐다. 정상인 백롬담에 한 번 올라 보고 싶었다. 다소 비장한 마음도 있었다. 호기롭게 선택한 휴직에 대해 백록담이 무언가 계시를 줄거라 기대했다. 뭘 좋아하는지, 뭘 잘 할 수 있을지 찾아 보고 싶었는데 한라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 뭔가 해답이 나올 것 같았다.
내 맘대로 되면 인생이 아니라 했던가? 한라산은 나에게 쉽사리 답을 주진 않았다. 내가 한라산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게 문제였다. 꽤나 긴 코스인데다 내가 체력적으로 좋지 못한 상태여서 등산을 하는 동안 생각 따윈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백록담에 올라서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백록담은 훨씬 좋았다. 눈 덮인 한라산 정상은 그야 말로 압권이었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까지 들었다. 불현듯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구체적인 계획은 세울 수 없었지만 내가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떤 행동을 하든 적어도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까지 찍었다. 물론 그것을 부치진 않았지만 의지만은 결연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라산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라산이 그립기도 했고 1인 기업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그곳에 올라야 할 것 같았다. 제주 그리고 한라산은 나에게 그만큼 인상적인 곳이었으니.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한라산을 동행해 준 분들이 있었다. 3년 전에 함께 했던 분들이 아닌 새로운 분들이었다. 휴직 기간 동안 알게 된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들은 나의 퇴사에 맞춰 제주여행을 함께 해 주었다. 물론 그들 또한 각자의 이유가 있는 여행이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았다.
아침 5시부터 서둘렀고, 6시 30분 정도 성판악에 도착했다.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고 결국은 7시가 조금 넘어 출발할 수 있었다. 12월 중순이지만 다행히 날씨가 춥지는 않았다. 3년 전 설산을 올랐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훨씬 따뜻한 아직은 가을의 기운이 남겨진 한라산을 걸었다.
다행히 매일같이 뛴 덕분인지 체력적으로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3년 전의 상태에 비해 훨씬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마음도 사뿐했다. 나를 찾아보겠다고 다짐했던 3년 전에 비해 훨씬 여유로운 등산이었다. 덕분에 3년 전의 상황과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꾸역꾸역 버텨왔던 3년이 나에게는 큰 자산이 된 것 같아 감사했다.
3년만에 찾은 백록담도 날 반겨주었다. 눈덮인 백록담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백록담의 응원도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 산을 오르면서는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초심"이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마음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돈에 연연하기 보다는 베푸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언제든 중요한 것은 진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 진심이 흔들린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듯 싶다.
등산하면서 가졌던 여유처럼 삶에서도 여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은 조바심이다. 뭐든 성급하게 하다 보면 실수를 하게 된다. 정도를 걷지 않게 되고 그러다 사고가 날 수도 있다. As slow as possible의 마음으로 나를 다잡고 또 다잡아야 할 듯 싶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말은 "적정한 삶"이다. 어쩌다 이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적정한 삶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이 단어가 떠올랐다. 적정한 삶이 무엇이냐는 학습이 필요해 보이지만 표면적인 뜻대로 적정하게 살고 싶다. 너무 오버스럽지 않으며 균형을 이루며 집에서도 집 밖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초심", "여유" 그리고 "적정한 삶"이라는 세 가지 화두에 대해 자문자답하며 올라갔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은 시원하게 뛰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트레일 러닝이었다. 내리막이라 생각보다 재미는 없었다 대신 종아리가 아려오고 무릎이 시큰 거리는 부작용을 얻었다. 덕분에 뛰어가는 게 좋은 게 아니란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천천히 걸어가며 주변을 살피는 것이 안전하게 산을 내려오는 방법이다. 그랬다면 처음 가졌던 마음처럼 한라산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아쉬움이 약간 남지만 덕분에 또 하나 배웠으니 그걸로 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