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된다.
얼마 전 달리기 모임 방에서 질문을 받았다.
호진님, 달리기 하니까 어떤 변화가 생겼어요?
매일 달리는 내 일상의 변화가 궁금했었나 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내 변화를 궁금해 했다. 대답을 하려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리가 안됐다. 두 달 넘게 매일 달리면서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다.
글로 옮겨 보면 생각이 나오겠거니 싶어 피씨를 켜고 한참 다시 생각해봤다. 무엇이 변했을까? 딱히 말할 게 생각나지 않았다. 어려운 질문이 나를 자꾸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냥 달리기가 좋았다. 달리기로 인해 나는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매일 달리면서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어 좋았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미치도록 나를 사랑한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이튿날, 소리를 질렀고 눈물을 흘렸다. 그날의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나를 사랑한다고 미친놈처럼 외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외치면 진짜 나를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 같아 좋다.
내가 좋음 되는거잖아?
달리며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되기도 한다. 생각을 많이 한다. 달리는 게 덜 힘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달리면서 아무 생각도 안한다고 하던데, 왜 나는 그렇게 생각이 많은지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인간관계 고민도 하고,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생각도 한다. 별의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러다 드문드문 "왔구나~"의 순간이 온다. 고민했던 글감을 어떻게 해야할지 정리 되기도 하고, 실행에 옮기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생각이 정리되니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얼마 전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걸 보며 한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블로그에 정리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겐 한계란 없는 듯 싶었다. 아빠인 내가 안될거라고 생각했을 뿐, 아이들 스스로는 안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한계를 깰 수 있게 만든 것은 비단 아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달리기 또한 내게 한계에 대한 화두를 매일 던져 주었다. 달리기를 통해 한계를 깨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참 신기하다. 매일 달리니 점점 달리는 거리가 길어지고 속도가 빨라졌다. 불과 한달전만 해도 달릴 수 없는 거리를, 달릴 수 없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지난 주말엔 12km를 뛰기도 했다. 10km 넘게 뛰어 본 건 처음이었다. 경주 마라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40분대의 기록으로 10km를 뛰기도 했다. 점점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고 급기야 5월 말에 하프 마라톤에 신청서를 내기도 했다. 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급기야 해외에 나가서 달리는 꿈을 꾸게 되었다. 2021년 뉴욕 마라톤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아직 하프도 달리지 못했지만 이미 마음은 뉴욕 마라톤으로 향해가고 있는 중이다. 겨우 10km 달리면서 힘들어 하던 내가 풀코스를, 그것도 해외 대회에서 뛸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달리기는 참 신기한 스포츠가 맞는 것 같다.
https://blog.naver.com/tham2000/221502699125
달리기 도전은 일상생활에서의 나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말도 안되는 도전을 가능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1,2월에 들었던 자기혁명캠프의 MVP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다보니 내 옆에 어느새 와 있었다. 김민식PD는 내가 정리한 글을 본인 블로그에 공유해주기도 했다. 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들이 근거있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일들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10만부 작가가 되겠다는 다짐도, 세바시에서 강의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소망도 나라고 못할 것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지금 쥐뿔도 없지만, 달리면서 도장깨기 하면서 한걸음씩 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달리기는 한계를 부수는 것의 메타포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다
달리기하는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매일 나의 달리기 직전 사진이 자극이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에게 자극을 주려고 올린 사진은 아니었다. 그냥 나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사진을 단체 카톡방에 올렸었다.
나 아침마다 달리는 사람이야, 멋지지?
사진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꾸준한 나를 드러내보고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나의 자랑을 자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극으로 받아들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행동이 누군가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얼마 전, 블로그 이웃 중 하나가 내 블로그를 보고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댓글을 남겨 주시기도 했다. 그 이웃님은 매일 나가서 조금씩 달리고 있으셨다. 비오는 날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5km 완주를 하기도 했다. 물론 나 때문이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내가 자극을 준 것 같기는 했다. 내가 누군가의 일상을 바꿀 수 있단 게 뿌듯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달리는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자극이 되고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급기야 모임까지 만들어 버렸다. 달리기를 하고 싶은데 막상 하려니 주저하는 사람에게 방아쇠를 당겨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https://blog.naver.com/tham2000/221516915322
당장 4월 25일, 목요일부터 시작한다.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자랑삼아 했던 것처럼 달리러 나가는 사진을 올리고 내가 달린 걸 공유하는 걸로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면서 또 방법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싶어 까페도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나눠 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영향력을 베푸는 것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고, 나의 존재 이유를 갖게 해, 나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하다보니, 이런 것도 만들게 되었다.
하루키는 그의 묘비명에 작가이자 달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요즘 나를 정의하는 것 중 하나가 달리는 것이 되었다. 휴직자이자 매일 글을 쓰고 매일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정체성에 달리기가 추가된 것이다. 비록 두 달 달렸을 뿐이지만!
사실 매일 달리면서 내 일상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와 많이 달라진 것 같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정리를 하다보니 달리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시나브로 변한 것이 두 달 동안 쌓이긴 한 것 같다. 달리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그걸 통해 나의 한계를 깨부수고 타인에게 영향을 주려고 시도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매일 달리다 보면 또 변할 것 같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으로 당황했지만, 덕분에 정리를 할 수 있어, 질문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그동안 이야기 했던 맥락과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잡고 정리해 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는 아내의 피드백 덕분에, 이번 글은 조금 발행하는 게 주저하게 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정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