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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Nov 13. 2019

[휴직일기] 제주에서 휴직기간을 돌이켜 보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는구나

반갑다 제주!


제주에 왔다. 언제와도 정겨운 제주다. 제주에 오니 지난 1월이 떠올랐다. 1월 3일, 휴직을 결정하고 지인과 제주에 와서 한라산에 올랐다. 한라산을 오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힘겹게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마주하면서 노력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힘들게 오른만큼 더 큰 감동을 준 백록담이었달까? 백록담에서 나를 위한 2019년을, "잘"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제주도 카페에 앉아 버킷리스트100개를 만들며 내 안의 욕망을 살펴보기도 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고, 덕분에 2019년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있었다.


10개월이 지난 11월, 다시 제주에 왔다. 그리고 1월에 왔던 카페에 다시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일부러 이 카페에 왔다. 1월의 나와,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변한 나를 만날 수 있어 고마웠다. 10개월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후회없이 지낸 것 같아 뿌듯했다. 나에게 고생했다고 토닥여주고 싶기도 했다.


지난 10개월을 돌이켜보다


지난 10개월동안 내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동안의 지루했던 삶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싶었는지 다이나믹한 도전에 나를 내맡겼다. 눈이 내리던 새벽, 한강에 나가 달리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라고 외치며 진짜 나를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간 누군가를 꺾고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조금은 벗어난 기분이었다. 봄에는 지리산에 가서 열흘 동안 포도만 먹으며 지냈다. 그리고 산속에서 새벽에 별똥별을 보며 우주의 기운을 느낄 수도 있었다. 온 우주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도전에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같았다. 여름에는 캐나다에 가서 아들이 맹장염이라는 횡액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 더 좋은 일이 생길거야"라고 이야기 해준 아들 덕분에 다시 힘을 내서 70일의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서는 42.195킬로미터 달리기에 도전해 4시간 조금 넘는 기록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도착지점에서의 성취감은 장독대의 장맛이 우러나듯 점점 더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물론 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함께 뛰고, 걷고, 책을 읽는 모임을 만들어 운영함으로써 조금씩 남들의 삶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물론 나는 판을 만들어준 것 밖에 한 것은 없었지만, 그 판 덕분에 사람들이 조금씩 변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대단한 것을 한 것 같은 착각에 엄청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분명, 많은 것을 한 10개월이었다.


불안한 감정이 올라오다


그런데 요즘들어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여유와 불안 사이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요즘이다.


최근들어 여유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다. 너무 아등바등 살면서 나를 너무 혹사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힘들게 사는 게 꼭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여전히 목표에 대해 헷갈리고 있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그런 것을 많이 느꼈다. 미친듯이 달린다고 잘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여유를 가질 때 오히려 오래 달릴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으니까.


나름 나의 루틴에 대한 자신감도 여유를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내가 꾸준히 일찍 일어나고,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몸에 나름 배면서 하루 정도 거른다고 내 루틴이 깨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내 주변을 둘러보며 조금씩 "땡땡이"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는 요즘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여유로운 삶을 살자고 했지만 방법을 잘 몰랐다. 어떻게 사는 게 여유로운 삶인지 알 수 없었다. 하루 이틀 루틴을 거르는 것이 여유로운 것인지 게으른 것인지 가끔씩 헷갈릴 때가 있다. 여유를 부리자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그 사이에서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분명 땡땡이를 쳐보겠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계획"(이것도 계획을 세워야 하는 나이기도 하다) 했으면서도 그게 맞는 것인지 걱정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나만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서 그 불안함이 조금 더 커졌다. 아이들과의 70일간의 기록을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남기고 싶어 35개의 꼭지로 혼자서 기록으로 남겨봤다. 매일 하루에 하나씩 쓰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했고 40여일만에 "드디어" 완성할 수 있었다.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책으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토닥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글을 쓴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에게 값진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초고를 다 쓰고, 출판사에 연락을 하고 또 몇 번의 거절을 받다보니 조금씩 내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내가 한달 넘게 한 것이 무슨 의미일까 걱정되기도 하는 요즘이다.


다시, 휴직일기로!


뭔가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게 잘 맞아 제주에 다시 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제주에 와서 엄청난 것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냥 조금 멍때리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혼자 카페에 앉아서 멍을 때리며 지난 10개월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순간 내가 매주 쓰겠다고 했던 [휴직일기]가 생각났다. 나의 휴직일상과 생각을 꾸준히 써보겠다고 만든 메뉴였는데 캐나다에 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휴직일기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안함이 올라오는 이런 감정을 정리라도 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놀랍게도 불안함을 정리하니 불안함이 조금은 가라앉는 경험을 했다라고 쓰고 싶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고 있던 휴직일기를 생각해 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그래도 기록으로 계속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매주 꾸준히 말이다. 그것이 뭔가 나의 감정을 그리고 일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다 보니, 새로 쓰는 휴직일기의 출사표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정리하려는 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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