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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Jun 10. 2019

좋은 직장을 다닌다고 좋은 직업을 가진 것은 아니다.

적당한 선택이 때론 필요하다.

회사에 친한 형이 한동안 채용업무를 담당했었다. 그 형은 잡다구레한 일이 많아 채용업무가 힘들다고 하소연하곤 했지만, 보람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신입사원이 주는 에너지를 알고 있기에 형이 말하는 보람이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채용 업무를 담당하던 그 형은 새로 돌어온 신입사원에게 꼭 해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어디보다 좋은 직장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좋은 직업인지는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입사가 확정된 친구들에게 뚱딴지 같은 이야기였다. 좋은 회사에 들어오시는 것을 축하하면 되었지 좋은 직장, 좋은 직업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게 생뚱맞았을 게다. 신입사원들에게 얼마나 의미있게 다가왔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대부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을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형이 신입사원에게 들려줬다는 저 이야기를 한참 동안 곱씹어 보게 되었다. 


나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걸까? 내가 하는 일은 좋은 직업일까?


휴직을 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직장과 직업을 구분하라

직장은 일하는 장소를 의미하며 영어로 workplace라고 한다. place, 즉 장소가 중요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ㅇㅇ 회사"를 다닌다고 이야기 할 때 회사의 이름이 바로 직장이 된다. 좋은 직장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회사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때의 좋다는 것은 급여나 복지혜택 등을 의미한다. 금전적인 혜택을 우선 고려하게 된다. 금융권이 좋은 직장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안정성 또한 좋은 직장의 가늠자가 된다.  공무원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많은 청년들이 노량진에 몰리는 것도 공무원이 주는 안정성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직업은 "어디에 다니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에 더 집중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나운서, 프로그래머, 딜러 등은 회사라는 테두리를 넘어 개인이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쿨하게 생존하라>를 쓴 김호 작가는 그의 책을 통해 직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직업이 있다는 말은 직장을 떠나서도 스스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업을 하든, 프리랜서든, 혼자 설 수 있는 상태인 것이지요. 명함에서 회사 이름과 직책을 지웟을 때 스스로 무엇으로 정의내릴 것인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쿨하게 생존하라 중>


좋은 직장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있는 반면 좋은 직업은 쉽게 정의내리기 어렵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좋은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모두가 바라는 직장을 다닌다고 해도 개인이 만족하지 못한다면 좋은 직업은 아닐 수 있다. 반면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꼭 높은 연봉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병곤 작가는 그의 책 <회사를 떠나기 3년 전>에서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유망 직종은 없기에 "나에게 맞는 유망직종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좋은 직업이란 결국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일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좋은 직장이었지만...

나는 좋은 직장이라는 사실에 끌려 은행에 취직했다.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준비했지만 시험에 낙방하고 크게 좌절했다. 그리고 취직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부랴부랴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사람들이 좋다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곳 저곳 다 썼고, 결국에 "은행"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은행 말고 다른 곳에 붙은 데가 없었다. 선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은행에 그렇게 들어갔다.


은행에 들어가고 몇년동안은 너무 좋았다.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은 직장으로 손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매달 21일 되면 차곡 차곡 들어오는 월급도 좋았고, 부모님 회갑이라고 챙겨주는 경조금도 좋았다. 다른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 비교하긴 어려웠지만 회사가 주는 안정감도 좋았다. 문제는 3년이 지나고나서부터 시작됐다. 직장에 못 들어가서 안달하다 직장에 들어가 3년만 지나면 못 나가서 안달한다는 말이 있다던데 내가 딱 그런 꼴이었다. 좋은 직장이라는 건 알겠는데, 내가 여기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 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어려웠다. 


그냥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끌려다니며 생활했다. 별다른 꿈도 없이, 의지도 없이 하라는대로 하며 살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온 에너지를 쏟진 않았다. 나만의 경력을 관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10년 넘게 그렇게 생활하고 나니, 내가 회사를 떠나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타까웠다. 좋은 직장을 다녔다고는 했지만 회사라는 타이틀을 빼고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다. 


다행히 휴직은 나의 직장과 직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할지, 회사에 복직하게 되면 어떤 일을 하는 게 맞을 지 고민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세가지 대안에 대해서 요즘은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정답은 없지만 뭐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좋은 직장과 좋은 직업 사이에서 



1. 좋은 직장과 좋은 직업을 일치시키는 방법


가장 이상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이지 않는 방법이다. 설레는 일을 찾아서 회사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사라는 게 직원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기다린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고.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면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슴 설레는 일이 있다면.


서두에서 "좋은 직장"과 "좋은 직업"을 이야기했던 그 형은, 지금은 투자금융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처음부터 은행에 들어오면서 투자 관련 업무를 해보고 싶었는데, 본의아니게 인사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하며 10년 가까이 투자 관련 업무를 준비했었다. 결국 10년이 다되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업무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래도 기다려보고 도전해보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설레는 일을 찾는 일이다. 앞에 말한 "형"처럼, 회사에 들어올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나처럼 좋은 직장이라는 말에 끌려 온 사람에게는 설레는 일을 찾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이 때 경계해야 하는 것은 화려한 것을 좇는 행위다. 한 때 나는 "전략기획", "인사기획" 업무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나와 맞는지 생각도 안하고 중요한 업무라는 생각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싶어했다. 


다행히 지금은 나와 맞지 않는 것을 좇으려고 하지 않는다. 화려한 것보다는,나에게 얼마나 맞느냐가 중요하니까.


2. 좋은 직업을 포기하는 것


좋은 직장과 좋은 직업을 둘 다 갖기 어렵다면 좋은 직업을 포기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좋은 직장에 만족하며 지내는 것이다. 회사에서 힘든 것은 회사가 월급을 주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즐겁고 보람만 느끼는 곳이 회사라면 회사가 월급을 줄 이유가 없다. 그런 사람은 돈을 내고 회사를 다녀야 한다. 좋은 직장은 그만큼 힘들기 때문에 좋은 직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다. 좋은 직장이 주는 가치 특히 경제적인 가치를 고민한다면 조금 힘들어도 좋은 직장을 고수하며 사는 것도 방법이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하면 몸도 마음도 편해질 수 있다. 회사를 단지 돈이 나오는 곳, ATM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좋은 직업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회사 밖에서 자기만의 직업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 할 필요가 있다. 회사 안에서 성취할 것이 없다면 언젠가 회사 밖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조용히 칼을 닦을 필요가 있다. 꼭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가지고 직업을 만들어 갈 필요는 없다.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면 특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회사 밖에서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좋은 직장은 취하되, 좋은 직업은 나가서 찾아보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들은 짊어가야겠지만.


3. 좋은 직장을 포기하는 것


과감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느 정도의 준비가 되었다면 좋은 직장을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스타트업 대표들 중에는 누구나 원하는 직장을 다니던 분들도 많다. 토스 대표도 치과의사 출신이다. 대기업을 때려치고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퇴사를 감행하신 분들도 많다. 진짜 하고 싶은 직업을 찾았다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처럼, 위험을 무릅쓴 도전이 가져다준 열매는 훨씬 크고 훨씬 달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다. 좋은 직장을 포기하는 것은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애가 둘이나 딸린 아빠에게 더더욱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절히 바란다면, 그리고 자기 확신이 있다면 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과감하냐라기보다는, 얼마나 준비가 되었냐이겠지만.




휴직을 하고 직장과 직업에 대해 돌이켜 보면서 나는 왜 여러 선택지들을 놓고 진작에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는지 반성이 되기도 했다. 직장생활 3년차때 과감하게 도전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적어도 앞으로는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살아가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좋은 직장을 다니며 좋은 직업을 갖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현명한 선택을 할 수도 있을 듯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20대의 왕성한 혈기에 했던 고민보다, 40을 앞둔 지금의 고민이 훨씬 좋은 결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기도 한다.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언젠가 나만의 답을 찾을 것이다. 당장이 아니고, 1년 후가 아니더라도 직업과 직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아무 생각없이 회사에 다니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좋은 직장과 좋은 직업 모두를 택하든 좋은 직장이든 좋은 직업이든 하나를 택하든 잘 고민해볼 것이다.  적어도 둘다 포기하지 않고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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