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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May 20. 2019

내 팀장을 얼마나 인정하시나요?

인정받으려고만 하지 않았는가?

왜 나는 만나는 팀장마다 이모양일까?



회사에 친한 선배 한 명이 있다. 회사를 다닐 때 가끔씩 선배와 술을 마시며 회사생활의 회포를 풀곤 했었다. 선배는 지금이야 좋은 자리에 있지만 대리시절  많은 고생을 했었다.  영업 현장의 전화를 입에 단내나도록 받아대는 일을 5년이나 했다. 게다가 승진도 누락되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지금 좋은(?) 부서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의 고생과 기다림 때문일지도 모른다.


선배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회사의 요직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부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선배를 부러워했던 것은 선배의 "팀장복(福)" 때문이었다. 선배는 가끔씩 나에게 자신의 팀장복에 대해서 이야기 하곤 했다. 어떤 팀장들과 함께 일했는지를 알았기에, 그가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문든 나의 상황을 생각해보게 됐다.


" 왜, 나는 만나는 팀장마다 이 모양일까?"


몇몇 좋았던 팀장은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팀장복을 이야기 할만한 사람은 없어보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모시던 팀장은 하나같이 뭔가 아쉬운 면(?)이 있었다. 과연 그게 팀장들의 문제였을까? 휴직을 하고 한발짝 뒤로 물러나 회사생활을 돌이켜 보며 나의 팀장복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나를 인정해주는 팀장


팀장들과 사이가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좋은 관계를 맺고 업무 성과를 냈던 경우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팀장은 5년차 때 만났던 "불도저"같은 팀장이었다. 그는 스피드와 타이밍을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임원들에게 보고해야 하는 경우면 눈에 불이 날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임원이 퇴근하기 전, 회의 들어가기 전에 빨리 보고해야 하는 것을 그의 "역사적 사명"으로 생각하곤 했었다. 팀장의 성격은 보고서를 출력할 때 나타나곤 했었다. 나에게 출력하라고 시키면 그는 곧장 프린터 앞으로 달려갔다. 아직 프린트 기능을 실행도 안했는데 말이다. 덕분에 나는 "Ctrl + P "를 누구보다 빨리 누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게 나랑 합이 잘 맞았었다. 타이밍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빨리 처리하는 나를 좋게 봐주기도 했었다. 대충해서 문제였지 빨리 하는 것은 자신 있었으니까. 100%라고 할 순 없지만, 보고는 대부분 만족할만한 결과로 끝이 났다. 시간에 맞춰 보고한 덕도 컸다. 그렇게 몇 번 쌓이다보니 대리였지만 팀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팀장으로부터 처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4년여 기간 동안 신입 티를 벗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나름 그때 인정이 좋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 팀장과 좋았던 기억만 간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 받았던 인정은 나름 나의 사회생활에 큰 자신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인정받기에 집착했던 나


회사 특성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팀장과 팀원의 사이가 꽤 중요했다. 팀장은 팀원의 첫번째 관문이었다. 그의 컨펌을 받아야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 팀장은 팀원의 멘토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업무를 진행하고 회사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팀장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중요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팀원을 팀장이 신뢰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팀장에게 인정받고 싶어했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 팀장이 내준 숙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했고, 그것을 좋은 보고서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디테일이 부족해 오타가 가끔씩 나고 스테이플러를 제대로 박지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름 인정을 받기도 했었다. Ctrl+P를 잘 누른 덕분에 팀장이 프린터 앞에 도착하기 전에 프린트물을 내놓기도 했고, 임원에게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팀장의 기를 살려주기도 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잘 발현하면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 욕구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상사의 인정에 집착하곤 했었다. 욕구가 유달리 강했다. 그리고 얼마전 읽은 <차라리 혼자살걸 그랬어>를 통해 왜 나는 인정받는 것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해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분명 책은 가정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왜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며 직장생활에서의 나의 아픔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저는 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아내로부터 인정받고 싶었죠. 왜 그럴까요. 저 스스로의 자아존중감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늘 확인 받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 안에 그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이수경, 차라리 혼자살 걸 그랬어>


저자가 아내에게서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처럼 나 또한 회사에서 팀장에게 인정받기를 항상 원했었다. 그 기저에는 내 스스로 회사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감의 부재가 있었다. 혹시나 그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일을 잘 못해서 쫓겨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의 인정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근원적으로 나의 낮은 자존감이 문제였다. 


휴직을 하고 조금 먼발치에서 회사 생활을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니 알게 된 점이었다. 내가 나를 조금 더 사랑했더라면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지도 않았을텐데...

 


나는 얼마나 팀장을 인정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했지만 남들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이 성과를 내면 "운"이 좋았을 것이라고 그들의 평가를 절하하기도 했다. 내가 모시던 팀장들을 인정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들의 수많은 성과보다 한 가지 결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왜 우리 팀장은 리더로서의 자질이 부족할까, 우리 팀장은 실력이부족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내가 팀장복이 없었던 것은 팀장에게 내가 기대하는 바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문득 내가 부러워했던, 팀장복이 많았던, 선배의 팀장들은 얼마나 대단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먼발치에서 바라봤기에 좋은 사람처럼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선배가 모시던 팀장을 내가 모시게 되면 그저 그런 팀장이 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팀장의 결점에 집중할 때 선배는 팀장의 장점에 집중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까.


어쩌면 내가 팀장복이 없었던 것은 인사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 마음가짐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했더라면...


<자존감 수업>에 보면 세상에 바꿀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하나는 과거고 다른 하나는 타인이라고 한다. 지나간 과거를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타인의 마음을 돌리고 움직이게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가졌던 팀장에 대한 아쉬운 감정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나의 바람 때문인 듯 싶었다. 과도하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도 타인의 시선에만 집착했던 탓이기도 했다. 나에 집중하기 보다는 타인에게 집중했던 것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다행히 휴직을 하면서 타인이 아닌, 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게 남이니까 굳이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나의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조금은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해보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는 작업일 것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다. <자존감 수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루 하루 나를 껴안아주며 나를 보듬어 줄 필요가 있다. 더이상 남들의 인정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 스스로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타인에게 들이댄 엄격한 잣대가 무뎌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 더, 지나간 과거를 더이상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지나간 것, 만약 회사로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은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 팀장이 별로라고 아쉬워하지 말고, 내 팀장을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필요해 보였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스스로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팀장복을 불러오는 출발이 아닐까 싶었다. 팀장복은 내가 만들기 나름이다. 왜 이제서야 그것을 알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라도 안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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