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시집 <李生이 담 안을 엿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전세를 사글세로 돌려
가게를 차리자
병든 아이와 고장난 시계
늙은 스승의 수필집 사이에
먹다 남은 약봉지도 끼워넣고
장롱 밑을 괴어놓은 관광 지도는 잘 펴서
썩은 사과라도 몇 개 올려놓자
(너는 느끼니 썩어가는 부위의 따뜻함, 그 신출귀몰의 異常暖冬을)
아내가 버린 내 색바랜 속옷은
여성지에서 밝힌 권*숙양의
최후의 진술과 함께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두자
유리문에는 작은 글씨로
“길을 묻지 마세요”
라고 써붙여놓고
평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졸지 말고
하루에 하나씩만 팔자
성냥과 가루비누를 들고 찾아오는
여린 후배 같은 황혼에 취해
혀 꼬부라지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전세를 사글세로 돌려
가게를 차리자
그래, 갯지렁이도 팔자
이창기, <李生이 담 안을 엿보다>, 문학과지성사(1997), '가게를 차리자' 전문
이 시를 좋아한다. 이창기 시인이 직접 밝힌 자신의 연보도 좋아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1986년_새로 산 옷을 입고 두리번거리며 인사동으로 첫 출근하다. 두려운 날들이 가도 우스운 날들이 오다.
1989년_첫 시집을 내던 날 아들 안욱을 보다. 우스운 날들이 가고, 부릅뜬 날들이 오다.
1997년_순서에 따라 두 번째 시집을 내다. 革命은 안 되고 집만 옮기다.
그리고 3년 후 나는 농담처럼 그로부터 이 시집을 건네 받았다. 그의 첫번째 시집과 함께. 그리고 다시 15년이 지난 다음에야 나는 그의 시집을 야금야금 꺼내어 읽는다. 아픈데 괜찮고 싶을 때. 우는데 웃고 싶을 때. 아닌 척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을 때.
장석주 시인이 붙인 이 시집의 해설 제목은 “덧없는 육체의 풍경, 혹은 육체의 생태학”이다.
‘가게를 차리자’는 뭉개지고 바스라진 육체의 삶이 결국에 가서 안착한 곳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것은 좌절된 육체-욕망의 풍경이다. (…) 이 소시민적 삶의 비천함을 수락해버린 자의 범속한 트임 때문에 퇴폐스런 생활조차도 “썩어가는 부위의 따뜻함”으로 이해된다. (…) 우리는 육체에, 혹은 육체를 통해 구현되는 여러 일상적 삶의 국면들을 예민한 촉수로 더듬는다. 그는 탈 나고 어긋난 육체, 떠도는 죽음을 향하여 있는 육체를 그려낸다. 그의 시집 <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는 육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고 상상력을 펼쳐나간 시인이 엿본, 덧없는 육체의 풍경과 육체의 생태학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장석주, ‘해설’ 중에서)
그런가? 내가 막다른 골목에서, 랭보도 아니고 보들레르도 아니고 말라르메도 아닌 그의 시집을 찾는 것은 이 ‘범속한 트임’ 때문인가. 그런 것도 같다. 차가운 냉소가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썩어가는 부위의 따뜻한' 슬픔이 툭-하고 흘러 나온다. 그리고 피식- 터져 나오는 서글픈 웃음. 아슬아슬하게 불어난 감정에 (이상한 방식으로) 물꼬를 터준다고나 할까.
우스운 날들이 가고, 부릅뜬 날들이 오고, 순서에 따라 우리는 각자의 연보를 쌓는다. 예정된 순서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은 도처에서 포착된다. 혁명이든, 이사든, 가게 차리기든. 그러나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이 生의 얄궂음과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시인은 유쾌하다. 내게 그의 시는 '범속한 상징으로 가득한 가게'처럼 보인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서정주 시인은 노래했다. 그러나 나는 이창기 시인의 이 '이상난동(異常暖冬)'과도 같은 시의 온도를 더 좋아한다. 때는 겨울인데 시는 뭉근한 불꽃처럼 따뜻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전세를 빼서 사글세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게는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가게를 차리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