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혁의 시 '슬픔의 왕'에 부쳐
나는 나보다 슬픈 사람을 다섯이나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몽유병자, 주정꾼, 어린 자식을 둘이나 잃은 부인도 있어요 나는 그들을 다 병원에서 봤습니다
잠결에 자신을 찔렀고, 취해서 애인을 때렸고, 아이들이 바다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네요 너는 어떻게 되었니? 너도 우리만큼 슬프니? 나에게 질문하였습니다
하나같이 슬픔의 왕들이에요 나에게도 병원이 필요하지만 나 같은 게 병원에 와도 되는 걸까, 이런 슬픔에도 치료가 필요할까, 동그랗게 둘러앉았는데 나는 고개도 못 들고
자식처럼 키우던 고양이를 베란다 밖으로 던진 얘기, 잘린 손이 아파서 잠을 못 잔다는 얘기, 병든 엄마가 지겨워 목을 조른 적이 있다는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우울증, 발모벽, 공황장애, 자기 집에 두 번이나 불을 지른 청년도 있어요 나는 그들을 다 병원에서 봤습니다 이야길 들어주는 의사도 나보다는 슬픈 사람이라서
그는 어릴 적 다섯 번 자해했고 말하자면 이건 좋은 여섯 번째 삶이라네요 나는 그렇게 슬픈 사람을 여섯이나 알고 있습니다 타인을 잃고, 자기를 잃고, 결국 자기 생각까지 망가뜨렸다가
병원에 와서 자기 생각을 찾고, 자기를 찾고, 결국 타인마저 고양시키는 그들은 하나같이 슬픔의 왕들이에요 되게 망쳐버린 부분이 있고 꼭 되찾고 싶은 생활이 있습니다
너무 슬픈 땐 무서운 게 없더라네요 아무래도 내겐 공포를 지나칠 수 있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내가 무언가를 말해도 되는 걸까, 나의 멀쩡한 집과 가족을 어떻게 설명할까
의사가 미소 짓습니다 괜찮으니 이제는 제 이야기를 해보라네요 그냥 슬픔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중인데,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는데요
- 김상혁,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문학동네, 2016, ‘슬픔의 왕’ 전문
나는 이 슬픔을 지켜보기로 했다,라고 시작되는 시를 쓴 적 있다.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을 떠난 첫 해였다. 외면하고 싶어 숨겨둔 감정을 혼자 몰래 꺼내 보는 시간. 슬픔에도 나르시시즘이 있어 나는 내 슬픔 속에서 기꺼이 익사당하고 싶었다.
슬픔은 분노로 바뀌기도 했다. 혐오와 자괴, 경계와 적대, 고독과 고립으로 그 양상을 달리했다. 자주 몸서리쳤지만 슬픔이 나를 쓰게 한다는 생각은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슬프다’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도(道)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듯, 슬픔을 슬픔이라 하면 슬픔이 아닌 것 같았으므로.
슬픔은 유일하다. 나의 슬픔과 같은 슬픔은 없다. 유일무이. 그러나 더한 슬픔이 있을 수는 있다. 내게는 절대적인 슬픔이 나보다 슬픈 사람 앞에선 상대적인 것이 된다. 김상혁 시인이 이 시집을 낼 무렵 나는 감정의 바닥에 이르렀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몇 년 후. 한국에 돌아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하나가 L. 거리가 조금 좁혀질 무렵, 어느 늦은 밤, 그녀가 무심하게 말했다. 팔목을 여러 번 그었다고. 어쩌다 그 얘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걷는 중이었다. 무심하다고 해야 할까 초연하다고 해야 할까. 느닷없이 타인의 슬픔을 들어버린 나는 난감한 기색을 감출 새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랬군요......”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 그리고 엿보게 된 L의 글. 그녀는 ‘슬픔의 왕’이었다. 이 시의 7연처럼, 망가진 시간이 있었고, 되찾고 싶은 자기가 있었다. 타인마저 고양시키는 슬픔의 감각으로 L은 20년 만에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엔 온통 슬픔의 왕들. 이런 슬픔에도 치료가 필요할까. 나는 고개를 숙인다. 아무래도 내겐 공포를 지나칠 수 있는 슬픔 같은 건 없다. 내가 무언가를 말해도 되는 걸까. 이제는 자기 이야기를 해보라는 작중 의사처럼, 미소 지으며 내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현실에 없다. 나는 스스로 의사가 되어 내게 말한다. “당신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는데요.”
'나는 이 슬픔을 지켜보기로 했다'라고 적은 어느 날의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단지 슬픔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202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