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 - '화장실이 없는 집'
방문 앞 수돗가에서 오줌을 싸요 엄마는
밤낮 터질 듯 충혈된 가랑이를 내벌려요 병든 집들을 빽빽이 둘러멘 앞산 구릉처럼 어금니를 앙다물고, 하지만 웬걸요
문드러진 잇새론 이내 흥건한 신음이 터져나와요
나는 꾹 참았다 밤에만 싸요 아무도 몰래 치마 속을 비집고 든 높바람이 막무가내로 온몸을 휩쓸고 가면
하수구 아린 구멍엔 우스꽝스러운 이끼만 돋아나요 우죽우죽 나는 자라나요
비가 오는 날이면 지린내는 온 동네를 뒤덮어 세수를 하다가도 이를 닦다가도 우욱우욱 종일 헛구역질을 해대는 집
담장 아래 웃자란 꽈리처럼 젖이 부푼
스무살 언니는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아요 들어와도 집에서 오줌 싸지 않아요 더이상 아무도 집으로 놀러 오지 않아요
마스크를 쓴 구청 직원들 킬킬거리며 쓰러져가는 양철문을 두드릴 때마다 대책 없이
오줌소태를 앓는 집 대책 없이
휘늘어지는 새벽이면 오줌줄기는 더욱 힘차고 억세 거짓말처럼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어요 싸늘한 머리맡이며 금 간 벽 틈으로 끝없이 넘쳐흐르는 오줌에 두둥실
집이 떠내려가는 꿈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엄마와 언니와 내가 손을 맞잡고 그득히 출렁이는 오줌 위를 떠다니는 꿈 끝내 정박하지 못한
- 박소란, <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2015), '화장실이 없는 집'
무엇이 없는 집. 무엇인가 결여된 집. 있어야 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부재하는 집.
시적 화자의 기억 속엔 '없는' 화장실이(그래서 꿈에서도 넘쳐나도록 '없는' 그 '화장실'이) 내겐 오랜 트라우마처럼 근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나의 꿈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넘쳐나도록 '있는' 화장실.
배설을 위한 자리를 찾아 터질 듯한 아랫배를 꾹 움켜쥐고 여러 개의 화장실 문을 열어젖히는 나는 매번 실패한다. 변기마다 이미 그득히 쌓여 있는 오물들. 차라리 탈출을 결심하지만 다른 화장실로 가는 출구는 없다. 나는 늘 맨발로 더러운 바닥을 서성이곤 한다.
정박하지 못하는 불안과, 배출하지 못하는 불안을 동시에 생각해본다.
수돗가에서 오줌을 누는 수치심과, 마려운 오줌을 참는 수치심을 생각해본다.
차라리 집이 오줌에 떠내려가 아름다운 꿈과, 차라리 오물 위에 내 것을 쏟아내 후련한 꿈도 생각해보는 것이다.
벗어나거나, 깊이 들어앉거나.
(2019-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