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
나 어렸을 적 보름이 되어 시뻘건 달이 앞산 등성이 어디쯤에 둥실 떠올라 허공 중천에 걸리면 어머니는 야아야 달이 째지게 걸렸구나 하시고는 했는데, 달이 너무 무거워 하늘의 어딘가가 찢어질 것 같다는 것인지 혹은 당신의 가슴이 미어터지도록 그립게 걸렸다는 말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이 말을 시로 만들기 위하여 거의 사십여년이나 애를 썼는데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 달은 아직 그 달이다.
- 이상국,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창비, 2016,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알 수 없는 것에 붙들려 사십여 년이나 애를 써온 노고에도 불구하고 달은 아직 그 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릴없는 노고는 계속된다.
서글픈 유머가 진득한 시간에 묻어 나오는, 그런 노고.
‘금요일'이라는 시도 옮겨본다.
마침 금요일이다.
보통은 금요일 오후에 로또를 산다
시가 안 되는 날은 몇 장 더 산다
(중략)
로또는 인류와 동포를 위한 불패의 연대이고
또 그들이 나에게 주는 막대한 연민이다
나는 부자가 되면 시 같은 건 안 쓸 작정이다
어쩌다 그냥 지나가는 금요일은 불안하다
누군가에게 이 세계를 그냥 줘버리는 것 같아서다
그리고 은밀하게 그것을 맞춰보고는
아, 나는 당분간 시를 더 써야 하는구나 혹은
아, 시도 참 끈질긴 데가 있구나 하며
다시 금요일을 기다린다
- 같은 시집, '금요일' 전문
시든 로또든 관류하는 정서는 '기다림'일 것이다.
하릴없는 기다림 혹은 그리 하기로 마음먹은 기다림.
기다림 자체로 삶이 추동되기도 하는 그런 기다림.
그렇기에
어김없이 돌아오는 금요일은
희망과 체념과 안도와 각성이 갈마드는 교차점이자
끝없는 순환로 위에 놓인 작은 정거장 같은 것일 테지.
맞다.
달은 아직 그 달이요, 금요일도 아직 그 금요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아직 그 달’과 ‘아직 그 금요일’ 덕분에 각각의 시를 썼고
나는 이를 빌미로 어느 금요일에 뭐라도 썼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