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03. 2021

손을 잡다, 손을 놓다

다시 읽는 장승리의 시 ‘체온’

 

당신의 손을 잡는 순간

시간은 체온 같았다

오른손과 왼손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놓았다

가장 잘한 일과

가장 후회되는 일은

다르지 않았다


- 장승리, ‘체온’ 전문, <무표정>




당신의 손을 잡는 순간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당신의 손을 잡은 나의 손은 오른손이었을까 왼손이었을까. 오른손이었다고 치고. 나의 오른손은 순간 뜨거워졌을 것이다.


왼손의 온도가 일상의 평온 혹은 고여 있는 시간이었다면 오른손의 온도는 낯선 정념 혹은 휘몰아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달라진 체온은 나를 다른 시간으로 데려간다.


‘균형’이 ‘균열’이 될 때 우리는 놀란다. 놀람의 양상은 두 가지. 짜릿함 그리고 불안. 통제되어왔던 쾌의 감정이 균열의 틈을 비집고 터져 나온다. 동시에, 점점 커지는 틈이 나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번져 나온다.


나는 당신의 손을 놓는다.


안정과 질서의 세계로 돌아온 것은 잘한 일이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흔들림과 혼돈의 세계를 놓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후회한다.


후회의 두 얼굴을 더듬는 지금,

나의 체온은 몇 도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백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