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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Feb 03. 2022

하루에 한 가지씩 말이 되어야 하고

이제니 시 ‘하루에 한 가지씩’에 부쳐

그 겨울은 말이 없었다

그 겨울은 말이 되지 않았다


두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물

수평선은 나를 두고 멀어지고 있었다


두 번 말하지 않는 이유는

세 번 말하지 않기 위해서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 때에도

점점 물러나며 멀어지는 물


남아 있는 날들이 줄어들 때

멀리 힘껏 물수제비를 던지는 아이가 있어

안간힘을 다해 저 너머로 가려는 마음이 있어


돌아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지 않게 될 때


하루에 한 가지씩 잊히는 말

하루에 한 가지씩 밀려나는 말


(…)


거리는 치밀하고

나무는 치열하다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하루에 한 가지씩 잊어버릴 것처럼


그 겨울은 말이 없었다

그 겨울은 말이 돌아오지 않았다


- 이제니, ‘하루에 한 가지씩’,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부분




이 겨울은 말이 되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뜨면 떠오르는 단어 두 개. 실재와 실제. 얼마 전부터. 잠에서 깨어날 때 이 두 단어가 흔적처럼 남아 있는 것은. 꿈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경계 즈음에서 실재와 실제의 관계를 의식한다는 증거일지도.


두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물

수평선은 나를 두고 멀어지고 있었다


수평선은 인식의 지평. 나는 반복해서 걷고 있고. 혹은 흐르고 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좁혀질 수 없는 수평선을 인식하는 것. 고정된 수평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수평선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수평선이 멀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나라는 고정된 좌표를 믿고 있기 때문인지도. 두 번 말하면 세 번 말해야 하고. 세 번 말하면 네 번 말해야 함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 때에도

점점 물러나며 멀어지는 물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헤엄쳐 와버렸다면. 안간힘을 다해 저 너머로 가려는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고. 돌아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때 벅차게 나타났다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들. 그것은 말일 수도 있고. 이미지일 수도 있고. 과거의 시간일 수도 있고. 망각을 반복하다 보면. 망각하고 있음을 기억하려 애쓰다 보면. 돌아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지 않게 될 때가 올까. 하루에 한 가지씩 어떤 말을 잊고. 물러나는 말에 떠밀려 다시 또 어떤 말을 기다리는 것. 다가올 것들. 다가올 말들.


거리는 치밀하고

나무는 치열하다


치열하지만 치밀하지 않은 문장들에 화를 낼 때도 있었고. 치밀하지만 치열하지 않은 정신에 실망할 때도 있었다. 거리처럼 치밀하고. 나무처럼 치열하게. 나무처럼 치밀하고. 거리처럼 치열하게. 치열하지도 않고 치밀하지도 않은 말들이 하루에 한 가지씩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겨울은 말이 없었다

그 겨울은 말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 겨울은 말이 없고. 이 겨울은 말이 되지 않고. 오지 않는 말을 ‘돌아오지 않는 말’이라고 적어도 될까. 이건 거짓말. 보낸 적이 없으니 돌아올 말도 없다. 타전한 말이 없는데 돌아올 말이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일 뿐. 하지만 돌아올 말을 상상해보는 것은 가능할지도. 무엇이든 가능한 가능세계.


보르헤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시는 이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상상하게 만드는 시가 좋고. 그 상상을 말로 바꾸어보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좋다. 그렇다면 이성을 작동시키는 시는? 시는 이성을 위한 것이 아니지만. 상상의 언어를 이성의 언어로 옮기는 작업의 과정 혹은 그 작업의 결과물을 읽는 것도 나는 좋아하(는 것 같)고. 때로 상상에서 이성으로 넘어오는 모호한 경계 영역에 머물러 즐기기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면서도. 마치. 꿈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모호한 경계 지대에 머무는 시간을 어떻게든 지연시키려 애쓰는 것처럼. 무엇을 위해? 일상의 영역에서는 마주치기 힘든 어떤 것, 무의식의 이미지, 혹은 희미한 말의 파편들. 그것들을 형상화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욕망은 내가 그 욕망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욕망인 것이고.


시력을 잃은 여든 살 작가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이가 여든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언제든 죽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꿈꾸는  과업인 내가 계속 살고 꿈꾸는  외에    있겠어요? 나는 항상 꿈을 꾸어야 하고,  꿈들은 말이 되어야 하고, 나는 말과 씨름해서 최선의 것이든 최악의 것이든 그걸 형상화해야 하는 겁니다.”


- <보르헤스의 말: 언어의 미로 속에서> 중에서


하루에 한 가지씩. 말이 없는 내 욕망이 말로 드러나기를 기다리며.

하루에 한 가지씩. 규정되고 이름 붙여진, 상징질서에 포획된 사물의 이름을 잊고. 그 사물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도 잊고. 그러다 보면.


말이 없고, 말이 되지 않고, 말이 돌아오지 않는, 그런 겨울의 세계에 제대로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성보다는 상상의 힘이 지배하는.


(2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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