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Oct 21. 2022

두 번의 생일, 한 번의 죽음

아버지가 보내준 마지막 생일 메시지

동생과 교대 후 아버지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병원에서 동생이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침상에 누워 가쁜 숨을 쉬며 아버지가 내게 전하는 생일 축하의 말. “생일 축하한다”고, “세월을 함께해줘서 고마웠다”고. 머리맡 옆엔 (글씨 쓸 기력도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이 받아 적은 메시지가 놓여 있었다. 한 변이 20센티미터가량인 작은 캔버스 패널 위로 아버지가 전하는 생일 메시지는 이랬다.


“사랑하는 큰딸 OOO.

함께 날아보자.

우주를 향하여.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영광이었다.”


섬망 증세로 아버지 정신이 자주 흐릿해지던 때였다. 기운을 짜내 목소리를 내고, 정신을 집중해 말을 골랐을 아버지.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 생일, 의지와 힘이 만개한 날


이어령 선생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생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이는 스스로 태어나는 거야. 엄마의 의지로 낳은 게 아니야. 아이가 아이의 의지로 나온 거지. 생일날이 그 의지와 힘이 가장 만개한 날이야.”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의지와 힘이 가장 만개한 날’을 기념하는 생일날에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의지,라니. 힘,이라니. 쇼펜하우어의 ‘의지’(그 차가움!)와 니체의 ‘힘’(그 뜨거움!)을 생각하며. 그 의지와 힘을 조건 지어주는 것이야말로 죽음이니까.


내 생일 1주일 뒤에는 아들의 생일이 있다. 언젠가 아이의 생일을 맞아 이런 메모를 남긴 적 있다. 거의 10년 전 일이다.


태어나서, 남과 같아지려 노력하다가,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다가, 고유의 자신으로 돌아가려 방황하다가, 결국 다시 같아지는 것.

출생-사회화-외적 개별성-내적 주체성-소멸.

- 아들 생일에 문득 든 생각 (2013-10-12)


그때나 지금이나 탄생과 죽음을 이어 생각하려는 나의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움직이고 있을 뿐. 생성에서 소멸로 나아가는 도상에 있는 존재자일 뿐이라는 생각. 다만 인간이 다른 존재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탄생과 죽음 '사이'를 인식하며 그 유한성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선택'이라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 사르트르는 이를 단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가 아닌가." - 사르트르


# 탄생, 죽음, 선택


아버지는 10월 12일 수요일돌아가셨다.


생전 그토록 사랑하던 손자의 생일날. 병실에서 꼬박 밤을 새운 나는 아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임종을 준비해야 했다. 탄생과 죽음이 교차하던 날.


앞으로 내게 남은 몫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아버지가 해온 선택들을 더듬어보는 것.

-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내가 해야 할 선택들을 헤아려보는 것.


그리고. 우주를 향하여 함께 날아보는 것.

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생일 메시지처럼.


(2022-10-4 ~ 2022-10-21)

이전 17화 검은 테이블 위의 정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