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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Oct 26. 2022

죽음이여 안녕

우리 또 만나요

- 엄마, 우리 또 만나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남편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렇게 이 말은 나의 마음속으로도 들어왔다.

다시 만나다. 다시 보다. 다시 만나고 싶다. 다시 보고 싶다.


# I WANT TO SEE YOU AGAIN


에릭 클랩튼의 명곡 <Tears in Heaven>은 죽은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에릭 클랩튼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Eric Clapton: Life in 12 Bars>(<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이라는 타이틀로 한국에 소개되었다)의 후반부를 더듬어본다. 청소 후 열린 창문 바깥으로 떨어져 사망한 아들 코너의 죽음 앞에서 에릭 클랩튼은 기로에 선다. 술과 마약으로 방황하던 시기로 돌아가느냐, 맨정신으로 극복하느냐. 이때 그를 구원해줄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뒤늦게 도착한 아들 코너의 편지. 아들의 장례식 이후, 적막한 집으로 돌아와 엄청난 양의 문상 편지들 중 하나를 열어 본 것이 계기였다. 그것은 아들 코너가 몇 주 전 밀라노에서 부친 편지였던 것. 아들이 죽은 후 도착한 아들의 편지라니. 4살짜리 아이의 서체를 캡처한 화면에서 단번에 나의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다음과 같은 말.

 

I WANT TO SEE YOU AGAIN


에릭 클랩튼의 아들이 보낸 편지


에릭 클랩튼은 남은 생을 아들을 추모하며 살기로 한다.


"맨정신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정신이 들고 이 끔찍한 비극을 긍정적으로 바꿀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 버려둔 스패니시 기타를 꺼내 지니고 다녔어요. 눈 뜨자마자 연주하고 그해가 다 가도록 연주하고 또 연주했어요. 그 상황을 이겨내려고요."


- 다큐멘터리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 릴리 피니 자눅 감독, 2020


에릭 클랩튼의 육성은 그가 직접 연주하는 <Tears in Heaven>으로 이어진다. 아들이 보낸 편지 중 "I WANT TO SEE YOU AGAIN"이라는 글씨가 에릭 클랩튼의 목소리와 아들 코너의 생전 사진들과 오버랩되는 장면은 긴 잔영을 남긴다.


# 죽음은 만남과 이어지고


그렇다면. 죽음은 ‘영원한 굿바이(goodbye forever)’가 아닌,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다시 안녕(hello again)’을 품은 어떤 지점이 될 수도 있는 것.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 떠오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Bonjour Tristesse.


보내는 슬픔이 아닌 맞이하는 슬픔이라는 점에서. 영원히 떠나보내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 그 이후에 예비된 또 다른 만남을 기원하는 것.


# 슬픔이여 안녕, 죽음이여 안녕


어릴 적 삼중당 문고로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읽었다. 그때 이미 책 표지는 낡은 고문서처럼 누렇게 바래 있었다. 엄마의 책들이었다. 나는 고등학생이었을 것이다. 손바닥 만한 문고판을 붙들고 세로줄을 읽어내려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이렇게 질문했다.


- 왜 제목이 ‘슬픔이여 안녕’일까?


엄마는 가끔 이런 식의 열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예컨대. 초등학생일 때 <전쟁과 여교사>라는 책(만화책이었나?)을 읽고 있으면 이렇게 질문하는 식이었다.


- '전쟁’이라는 단어와 ‘여교사’라는 단어가 만나서 어떤 느낌을 주는 것 같아?


왜 제목이 '슬픔이여 안녕'일까. 나는 잠시 생각했을 것이다. 슬픔은 흘려보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나이. 슬픔과 작별하고 싶은 거 아니겠냐는 식으로 나는 답변했던 것 같고. 엄마는 이 작품에서 말하는 ‘안녕’이 프랑스어로 'Bonjour'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헤어질 때의 안녕,이 아니라 맞이할 때의 안녕,이라고. 당연히 'farewell'의 의미로 안녕을 생각했던 나는 프랑스어 제목이 <Bonjour Tristesse>임을 알았다. 엄마가 덧붙였다.


- 아름답지 않니? 슬픔을 안녕,하고 맞이하는 거 말이야.


아, 그렇구나. 슬픔은 안녕,하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안녕,하며 맞이하는 것이구나. 슬픔은 맞이할 때 아름다운 것이구나. 작가가 Au revoir라는 작별 인사 대신 만날 때 사용하는 Bonjour라는 말을 고른 것에 대해 나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Bonjour라는 말 대신 Au revoir라는 말이 선택되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다시 만남’을 전제하는 안녕이라면 Au revoir를 사용한다 해도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손상되지 않을 테니까. Au revoir는 문자 그대로 ‘다시(re-) 봐요(voir)’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헤어질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시 만남’을 기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봐요’ 혹은 ‘또 뵙겠습니다’라는 우리나라 말 역시 헤어질 때 주고받는 흔한 인사말이다. 어쩌면 이는 전 세계 공용 화법인지도. 중국어로도 헤어질 때 인사말은 짜이찌엔(再見) 아니던가. 말 그대로 ‘다시 보다’라는 의미. 다시 봐요. 또 봐요. 다시 만나요.


# 다시 만나요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Tout s'est bien passé>(한국에서는 '다 잘된 거야'로 번역되었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영화 소식을 우연히 접한 동생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영화는 안락사를 원하는 아버지와 두 딸의 이야기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앙드레(앙드레 뒤솔리에 분)는 치유 불가능한 자신의 상태를 끝내고 싶어한다. 결국 큰딸 엠마뉴엘(소피 마르소 분)에게 '끝내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우여곡절 끝에 두 딸은 아버지의 존엄사를 돕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존엄사가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프랑스를 떠나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하려는 아버지의 D-day는 점점 다가오고. 스위스로 떠나기 하루 전날, 큰딸의 연인(혹은 남편) 세르주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 세르주가 앙드레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 귓속에 들어왔다.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도.


Au revoir.


영화를 보는 당시 이 말이 단순한 작별인사로 느껴지지 않은 것은 Au revoir라는 말이 주는 '다시 만남'이라는 함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D-day. 스위스로 떠나는 아버지와 구급차 안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는 큰딸 엠마뉴엘의 마지막 말도 궁금했다. 말 그대로 (죽으러 떠나는) 아버지와 나누는 마지막 인사.


Au revoir, Papa.


감독은 “영화를 보는 각자는 죽음에 대한 감정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작별을 앞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출처: 허핑턴포스트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201735)


죽음이라는 작별을 앞둔 아버지와 딸의 관계. 그 사이에서 오갈 수 있는 마지막 말은 짧고 간결했다. 나는 '잘 가요, 아빠'라는 통상적 표현 대신 '다시 만나요, 아빠'라는 의미로 읽는다.  


# 임종기에 들어서다 - 우리 또 만나요


아버지가 임종기에 접어든 것 같다는 느닷없는 선고. 준비했으나 준비되지 않는 마음. 의사 S는 1주일에서 최대 2주일 정도를 예상하는 듯했다. 섬망 증세는 악화되었다. 돌아가시기 5일 전까지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았고 내 이름을 물으면 한 음절씩 정확히 끊어 발음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회진을 도는 의사 P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의사를 알아보지 못했고 의사의 이름과 직업을 물었다. 의사 P는 친절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과 직업을 밝혔다. 대학 교수이자 의사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간호사들 잘 챙기라는 말까지 당부했고, P는 '네, 선생님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라는 말로 응답했다. P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문득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던 나를 바라보았다.


- 우리 이제 헤어지는 거야?


눈물이 터졌다. 병실에서 오래 참아온 눈물이었다. 나는 울며 말했다.


- 아직 아니에요, 아빠.


유난히 아버지를 세심하게 챙겼던 호스피스 도우미 J샘도 함께 울었다. 아버지가 섬망으로 손을 크게 휘저을 때마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던, 마음결이 고운 분이었다. 아버지가 불현듯 J에게 손을 내밀었다. J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가 J에게 말했다.


- 고마웠어. 나중에 또 만나요.


J는 더 서럽게 울었다.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4일 전. 나는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품목으로 손싸개와 기저귀를 구입했다. 콧줄을 잡아떼려는 아버지의 손에 아기처럼 손싸개가 씌워졌고.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배변 문제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세 겹의 기저귀가 채워졌다. 밤새 섬망 증세로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는 1인실로 옮겨졌고, 수면안정제를 맞은 후에도 괴성에 가까운 신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문득, 잠을 자지 않고 보채는 갓난 아들을 달래느라 매일 밤 9시경이면 진땀을 빼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아들의 손에 손싸개를 씌웠고, 밤새 기저귀와 수유에 시달리며 잠과 싸웠다. 아버지는 아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3일 전.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평소보다 떨어졌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소변량도 급격히 줄었다. 손싸개를 벗기려고 애를 쓰던 기력마저 사라진 아버지는 의사가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던 몸의 동작과 소리가 잦아들었다. 대신 눈을 마주치고 뭔가 말하려는 듯한 표정은 지속되었다.


하루 전. 열이 좀 더 올랐고 해열제가 투여되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얼음팩이 끼워졌고,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임종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정확히 1주일 후. 오전 회진에서 담당 주치의 K는 '오늘 안으로 임종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곧 임종실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 가족들을 부르라고 했고, 영양제나 진통 수액을 서서히 뗄 것이라고 했다. 준비했으나 준비되지 않는 마음.


그날. 아버지는 '해밀방'이라 불리는 임종실로 옮겨졌고,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정사각형의 공간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들을 건넸다. 평소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악을 머리맡에 틀어놓았고, 울다 이야기하다를 반복했다. 동생과 아들과 남편이 도착했고. 아버지는 평소 가장 사랑하던 사람들에 둘러싸여 서서히 호흡을 멈추었다. 주치의 K가 도착해 사망 선고를 하기 직전까지 우리가 아버지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 아빠, 우리 또 만나요.

- 아버지, 언젠가 다시 만나요.

- 할아버지, 감사했어요.


모두가 흐느꼈지만 아무도 울부짖지는 않았다. 떠나는 자를 고요하고 편안하게 보내주는 것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죽음 이후엔 의식과 행정 절차가 남는다.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꾸려졌고, 부고 전화와 문자를 돌렸다. 모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추어 착착 진행되었다. 원 스톱 쇼핑. 빈소를 고르고, 제단 화환 장식을 고르고, 진열 선반에 전시된 관과 수의, 유골함을 고른다. 옵션은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음식과 기타 잡다한 장례 물품을 주문하고, 화장터와 운구차를 예약한다. 발인하는 날 새벽, 장지까지 함께해줄 사람들을 위해 숙소를 잡는다. 슬픔을 잠시 보류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장례 절차와 거대한 장례 산업이 한몫을 한다.


원 스톱 쇼핑으로 분주한 사이. 카톡 메시지가 뜬다. 친구 L이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보내왔다.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올 초에 암 판정을 받고 힘겨운 선(先) 항암 끝에 최근 수술을 받은 L은 빈소로 달려오지 못하는 마음을 이렇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김환기의 1970년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9월 중순경, 힘겹게 화장실 출입을 하던 아버지가 문득 내게 L의 안부를 물었다. L의 수술은 잘 되었느냐고. 그래서 잘 되었다고, 남아 있는 암세포 없이 깨끗하게 잘 되었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자신의 일이라도 된 듯 무척 기뻐했다. 정말 다행이라고. 젊음이 좋다고. 앞으로도 관리 잘해서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이 말을 꼭 L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 뜬금없는 질문에 뜬금없는 메시지 전달 요청. 그게 무엇이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해드리려고 노력하던 중이라 나는 아버지의 부탁을 듣고 바로 L에게 이 메시지를 전했다. 수술 후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고생하던 L은 이 말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런 L이 아버지를 위해 쓴 짧은 편지.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첫 번째 따님인 OO의 친구 OOO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그림쟁이입니다. 아버지 가시는 길에 떠오르는 그림이 있어 저의 기도와 함께 말씀 올립니다. 자세히 뵌 적이 없어 오늘이라도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잠시라도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아버지, 언젠가 저의 수술을... 걱정해 주셨었지요. 네... 염려해 주신 만큼 잘 견디며 살아가겠습니다.

(중략)

아픈 시간 너무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먼 곳에서라도 아버지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마음 다해 함께 하겠습니다. 아버지, 평안하셔요.

OOO 올림


나는 원 스톱 쇼핑을 잊고 빈소에서 잠시 울었다. 그리고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최근 매스컴에 수시로 오르내리는 그의 대표작 <우주>와 결을 같이하는 푸른색 전면 점화. 먹색이 감도는 짙은 푸른색은 나도 L도 좋아하는 색이다. 검푸른 밤하늘 빛깔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L은 이 그림을 골랐을까. 아니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화가는 점 하나 하나를 찍으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밀고 갔을 것이다. 점 하나를 확대해서 본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개념이 겹쳐진다. 하나의 단순한 실체. 그러나 하나이면서 이미 여럿인 것. 하나 안에 접혀 있는 내적 복수성. 이 그림은 ‘하나’로 셈해질 수 있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무수한 점들은 셀 수 없다. 하나 안의 무한. 점들은 각각 하나의 모나드이다. 들뢰즈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개념을 빌어 정립한 다음과 같은 명제도 떠오른다. “주체가 관점을 갖는 것이 아니라 관점이 주체를 만든다.” 하나의 관점이 아닌, 관점들이 조망하는 하나의 세계. 어쩌면 이 그림 자체가 하나의 모나드이며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이면서 질적으로 여럿인 세계로서의 주체를 감지하며 화가는 점을 찍었을까.


아버지는 저 무수한 점들 중의 하나이다. 점 하나에 별 하나를 대입해본다. 무수한 별들이 이루는 무한한 우주를 상상한다. 나 역시 저 무수한 점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로서의 ‘하나’ 안에서 ‘아버지’라는 ‘점’과 ‘나’라는 ‘점’은 만날 수밖에.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말한다.


아빠, 우리 또 만나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요.


(2022-10-26)


잘 알려진 대로,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에서 모티프를 얻어 화답한 작품이다. 시에서 모티프를 얻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예술의 세계. 나는 L의 그림에서 모티프를 얻어 글로 표현하고 싶다. 그렇게 화답하고 싶다.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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