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시 ‘남아 있는 것들’에 부쳐
나에게는 끄적거린 시들이 남아 있고 그것들은 따듯하고 축축하고 별 볼 일 없을 테지만 내게는 반쯤 녹아버린 주석주전자가 남아 있고 술을 담을 순 없지만 그걸 바라보는 내 퀭한 눈이 있고 그 속에 네가 있고 회색 담벼락에 머리를 짓이긴 붉은 페인트 붓처럼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헝클어놓은 네가 있고, 젖은 바지들의 돛, 아침의 기슭엔 면도한 얼굴로 말끔하게 희망이, 오후가 되면 거뭇거뭇 올라오는 수염 같은 절망이 남아 있고 또다시 아침, 부서질 마음의 선박과 원자로들이, 잘 묶인 매듭처럼 반드시 풀리는 나의 죽음이 남아 있고
-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사, 2022, ‘남아 있는 것들’ 전문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지 한 달이 지났다.
공교롭게도. 4월 1일, 만우절에 아버지의 암 소견 소식을 처음 접했고, 4월 12일, 응급실에서 말기암 상태를 처음 확인했으며, 그로부터 6개월 뒤인 10월 12일, 호스피스 임종실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호흡을 지켜보았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사망일은 아들의 생일이었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견디기 위한 방식으로 나는 무언가를 끄적거렸고, 지난 6개월간의 메모와 노트는 20편의 글로 묶였다. ‘죽음’과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으나, 그 둘의 병치는 결국 애매하고 기묘한 성질의 것으로 남았다. 간병 일지도 아닌, 철학적 에세이도 아닌 또 하나의 잡문 더미. 그러나 이 잡문 더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내게 남아 있는 유의미한 것들 중 하나이다.
“계속해.” 생애 처음으로 써본 평론이 신춘문예와 어느 문예지의 본심에 올라 내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 아버지는 병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계속할 것을 주문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나는 계속할 것인가?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계속되고 있지만. 나는 계속할 것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계속해보려는 의지를 되찾기 위해 평소처럼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일상의 리듬은 좀처럼 나를 촉발시키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시이든 시에 관한 것이든) 쓰고자 하는 마음을 촉발하는 자리엔 대부분 시가 있었다. 나는 시를 쓰지 못하고, 시를 생각하는 마음도 치열하지 못한데. 시는 느닷없이 출몰해 알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다 마지못해 무언가를 끄적이게 된다면, 그것이 비록 축축하고 별 볼 일 없어도 내게는 분명 ‘남은 것’이 될 테니 나쁠 것은 없겠지.
”아침의 기슭엔 면도한 얼굴로 말끔하게 희망이, 오후가 되면 거뭇거뭇 올라오는 수염 같은 절망이” 내게도 남아 있다는 것.
“잘 묶인 매듭처럼 반드시 풀리는 나의 죽음”도 남아 있다는 것.
이 ‘남아 있음’의 감각으로 나는 계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2-11-16)
덧글. 간밤에 진은영 시인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꿈을 꾸었다. 재밌지 않은가. 결국 그녀의 시로 인해 나는 무언가를 다시 끄적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