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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나아가야 해

by 여름

막다른 외길

우두커니 서 있는 나


더는

멈출 수도 없는 난


목적지 없는 열차에

꾸역꾸역 몸을 싣는다


어디로 향해 가는지

알 수 없는 텅 빈 열차


멈춰 선 내 마음은

빠르게 비껴가는 창밖 풍경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다


자꾸만 뒤로 물러나는

내 안의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

가만히 삼키고


눈물 흘리지 않으려

애써 입술을 깨문 채


나지막이

읊조린다-


슬프지만

나아가야 해




‘슬프지만 나아가야 해...’


휴대폰 메모장 한켠에서 2021년 11월 2일의 짧은 메모 하나를 발견했다.

이 한 줄이 타임머신을 태워 그때의 나로 데려다준다.


더는 물러설 수도 없는 막다른 곳에서 떠밀리 듯 나아간다.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그 길을 나 자신에게 의지한 채 그저 묵직한 걸음을 떼는 수 밖에.


목적지 없는 열차에 탑승하지만, 의식은 더욱 또렷해지고 해야 할 일은 선명하다.

내가 내릴 곳이 어디 인지, 그곳에서 나는 또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의 기로 앞에서도 나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 열차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어쩌면 그 답은, 여전히 달리는 나 자신일지 모른다.


종착지 없는 열차처럼

그렇게 나는

여전히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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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