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가슴을 베여 본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 언어도 흉기가 된다는 것을 안다. 해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세 치 혀가 사람을 살리고 죽이기도 한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와 같은 말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말과 글이 가진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인류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지금의 문명과 문화는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언어도 좋지 않은 쪽으로 쓰면 사람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기도 하고 더러는 목숨을 앗기까지 한다. 무시하는 말 때문에 살인을 하였다는 사건을 뉴스에서 종종 보지 않는가.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볼일을 보고 집으로 오는데 아파트 놀이터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여러 명 모여 있었다. 생각없이 지나가자니 아이들이 입에 올리기도 거북한 욕설을 내뱉고 있는 게 들렸다. 한두 번 겪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쳐 왔지만 기분이 참 씁쓸했다. 요즘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 보면 일상으로 쓰는 대화중에 욕설이 난무한 것을 듣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부모로서 예사로 보이지 않아 안 그런척 하면서 귀를 세우고 들어 보면 이야기하는 내내 요리에 양념 뿌리듯, 노랫가락에 추임새 넣듯 욕설을 내뱉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곁에 모르는 사람, 어른이 지나가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욕설을 내뱉는다. 더 이상한 것은 아이들이 욕설을 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저네들끼리 아무 뜻 없이 사용하는 습관 같은 것이란다. 욕설이 내포하고 있는 본래적 의미와는 무관하다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부끄러운 것은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이 타이르는 것도 우습게 되어버린 현실이다.
가족이 함께 보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각종 매스컴을 접하다 보면 욕설과 비속어, 막말과 폭언 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수시로 본다.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을 비롯해 소위 식자층이라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들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욕설이며 비속어, 막말과 폭언 들을 마치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보태기도 부지기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어쩌다 거짓말이 탄로가 나면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아니면 그만이다’는 식의 뻔뻔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마치 공식화된 수순처럼 행하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는데 어른들이 이런 모습을 대거 보이고 있으니 아이들이 욕설을 하는 것을 보더라도 뭐라 할 처지가 못 된다.
언어 사용의 폐단이 도드라져 보이는 곳 중 하나가 국민을 대신하여 일한다는 국회의윈들이 모인 국회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때부터 막말과 폭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대통령이 된 지금도 진행형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내뱉는 말들도 가히 트럼프 못지않은 수준에 이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국회의원은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 지식인들이다. 모범을 보이며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할 그런 지식인들이 막말과 비속어를 남발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언제인가 모 국회의원은 지역 경찰을 지칭하여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는 막막을 한 후, 여론의 비난이 일자 사과했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이 내뱉는 막말과 폭언들로 인해 텔레비전에서 미친 개새끼와 몽둥이가 튀어나오고 또 다른 불쾌한 것들이 튀어나와 기분을 언찮게 한다. 입에 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폭언들은 고스란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로 들이닥친다. 화면을 통해 튀어나온 미친개와 몽둥이는 실체가 아니라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입으로 내뱉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말의 속성이지만 무형 무취의 말과 글에도 정기가 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언이 되어 튀어나온 미친개와 몽둥이는 듣는 이의 감정에 그만큼의 흔적을 남긴다. 입 밖으로 내뱉어진 언어가 가진 정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래의 실험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언어가 가진 정기를 실험하기 위해 콩나물을 길러 보았다고 한다. 두 용기에 콩나물콩을 담아 기르면서 한쪽 콩나물에는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다른 한쪽 콩나물에는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날이 지날수록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콩나물은 쑥쑥 자랐는데 비해 악담을 들은 콩나물은 잘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콩나물뿐이 아니라 물과 밥을 두고 실험을 했을 때도 같은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물은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않은 물과는 달리 아름다운 육각수 모양을 띄었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밥은 좀 더 오랫동안 상하지 않은 반면에 욕설을 들은 밥은 곧 곰팡이가 피었다고 한다. 욕설이나 폭언을 들을 때 영혼이 황폐화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실제로 영혼이 황폐화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실험을 통해서 입증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