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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비교–우울’의 사이클

최악의 시너지 패턴

by 가은이 아빠

2025년 1월 1일. 희망의 해를 기대하며 맞이하는 첫날. 우리 함께 Happy New Year를 외치고 싶었지만, 현실 속 우린 응급실로 급하게 가고 있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맞춰 겨우 퇴원했는데, 새해부터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항암 후 역시나 몸이 축 처져 있던 가은이에게 이번에는 좀 더 심각한 상황이 다가왔다. 꽤 응급신호라고 할 수 있는 녹색토를 한 것. 담즙이 포함된 구토로, 약물이 유산균마저 다 박멸해 버렸기에 장기능 저하로 몸속 가스가 배출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변으로 배출되지 않아 유일한 출구인 입으로 배출된 것이다.


계속되는 구토에, 조금 더 지속되면 코에 튜브를 넣어 가스를 빼내어야 한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너무 불편하여 참지 못하고 튜브를 빼버리기에 반복되는 튜브 삽입으로 더 고통이 커진다고 의사도 쉽게 권유하지 않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해 보기로 한 관장. 다행히 힘이 없는 가은이는 별 저항이 없었고 난 솜으로 30분 정도 항문을 막고 있었다. 병원 지침보다 더 길게 막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별 효과가 없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하나라고 걱정하던 찰나.


갑자기 '뽀오옹' 소리가 들렸다. 세상 방귀는 다 독가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가은이 방귀는 '회복의 산소'였다. 조금씩 가스가 빠지기 시작했고, 다행히 잘 치료되어 3일 후 우리는 집에 올 수 있었다.




휴직한 덕분이었을까? 회사일을 머릿속에서 많이 덜어 냈기에, 겪은 긴급상황 대비 내 스트레스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짜증이 올라왔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 메시지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이전 일상과 비교되었다.


가은이 병을 아는 사람들의 위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고

가은이 병을 모르는 사람들의 메시지는 모두 무미건조한 형식적 인사 같았다


그렇게 부정의 에너지가 폭발하던 찰나, 갑자기 이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미쳤구먼, 미쳤어!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이 감정들은 대체 뭐야?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나를 발견하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지금 이 상황에, 전혀 감사해하지 못하는 내가 보였다.


마치 병원 연줄이 있는 사람처럼, 안과 확진 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다음날부터 받았으면서

다행히 가은이 두 눈 중에 왼쪽만 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전사 검사결과 다행히 비유전이라 다른 종류의 암에는 취약하지 않은 상황인데

정말 다행스럽게 나도 와이프도 휴직하여 가은이를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세상이 내게 준 감사의 Sign은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럴까?” 한 발만 물러서면 다 보일 텐데. 아마도,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연말을 마무리하며 트리도 꾸미고 싶었고, 새해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빌고 싶었다. 우리 가족만 특별한 날의 기쁨을 허락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의 늪에서, 나는 계속 세상의 온갖 부정적 에너지를 빨아 댕기고 있었던 거다.


“정신 차리자. 너 지금, 충분히 감사해도 될 일이 많아”


‘다수’를 정상이라 규정하고, 그 기준에 맞춰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일. 세상에 이보다 더 어리석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 하지만, 머리로만 알면 무슨 소용인가? 그 바보 같은 일을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이 바로 나인걸.


‘공포–비교–우울’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새해부터 내가 극복해야 할 숙제가 명확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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